가상화폐에 100만원 넣고 50일 동안 벌어진 일… ‘개미투자’ 체험기 기사의 사진

이전이미지다음이미지

그래프가 요동친다. 한때 2만 달러를 웃돌던 가격은 반토막이 났다. 일주일째 폭락과 반등을 반복하며 계단형 하락곡선이 돼 있었다. 심리적 방어선은 1만 달러. 붕괴가 눈앞에 닥쳤다. “1만603달러… 1만429달러… 1만285달러….” 스마트폰에 실시간 표시되는 가격을 따라 읽는다. 1만 달러 붕괴 직전, 그래프는 다시 꿈틀거리더니 소폭 상승세로 전환됐다.

그렇게 또 하룻밤의 사투를 끝냈다. 암호화폐(가상화폐) 비트코인은 최근 거품 붕괴의 사선을 넘나들고 있다. 선물시장 상장 이틀 전인 지난해 12월 7일부터 롤러코스터 장세를 보인 이달 24일까지 약 50일 동안 100만원을 투자하고 벌어진 일들을 기록했다. 이것은 투자 경험이 전무했던 기자의 ‘가상화폐 개미’ 체험기다.

비트코인, 제주여행과 바꾸다

신기술이 등장했다. 블록체인과 가상화폐는 미래 생활환경과 금융질서를 송두리째 바꿀 만한 힘을 가졌다. 하지만 사람들이 끌린 건 기술보다 투자가치였다. 기술을 설명하는 과정에 횡재한 사연이 함께 전해졌다. 그럴 만도 했다. 지난해 6월까지 300만원대였던 비트코인 가격은 10월 700만원, 11월 1300만원, 12월 2500만원대로 치솟았다. 비트코인이 미국 시카고 옵션거래소(CBOE)에 선물 상장돼 제도권 금융시장에 진입한 12월 9일을 앞두고서였다.

궁금했다. ‘가상화폐는 정말 금처럼 가치를 지녔을까.’ 지난달 7일 국내 가상화폐 거래소 A사에서 100만원어치 비트코인을 구입했다. 올여름 제주여행을 목표로 지난해 2월부터 매달 10만원씩 모은 돈이었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진 않지만 소중하게 간직해온 것. 어쩌면 가상화폐 시장에 들어간 투자금 중 상당액이 그런 돈이었을 테다.

비트코인 구입 절차는 간단했다. 거래소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을 스마트폰에 다운로드한 뒤 회원가입 절차를 밟았다. 거래소에서 제공한 가상계좌로 현금을 이체하니 예치금이 만들어졌다. 이제 원하는 가격에 예치금을 투입하면 가상화폐 투자를 시작할 수 있다.

애플리케이션 화면의 시세표는 실시간 가격을 알려줬다. 그날 1800만원대에 거래되고 있었다. 1830만원이 표기됐을 때 100만원을 전액 투입했다. 0.054BTC(비트코인 단위)가 생성됐다. 열 달 모은 여행자금은 비트코인 1개를 20개로 쪼갠 값에 불과했다.

‘살아 움직이는 돈’을 봤다

투자금의 등락은 시시각각 애플리케이션에 표시됐다. 100만원은 99만9000원으로 내려가는 듯하다 금세 101만5000원까지 상승했다. 이튿날 아침 눈을 뜨자마자 찾은 것은 스마트폰이었다. 거래소에 접속해 투자금을 확인했다. 105만원. 5%나 상승했다. 이유가 있었다. 밤새 비트코인 가격은 2500만원대까지 치솟았고, 아침에 1900만원대로 떨어졌다. 잠들기 전보다 상승했지만 밤중 최고점에 비하면 낮다. 그래도 아쉽지 않았다. 이렇게 살아서 움직이는 돈을 보는 건 처음이었다.

지하철 식당 카페에서 스마트폰으로 가상화폐 가격을 확인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인터넷에 등장한 ‘가즈아’란 말이 현실 공간에서 들려오는 듯했다. 이들에게 가상화폐 시장은 살면서 처음 주도권을 쥐어본 공간일 터였다. 취업난을 뚫으면 전세난과 육아대란에 놓이는 20·30대 월급쟁이에게 투자는 기회와 공포가 상존하는 영역이다. 주식은 두렵고 부동산은 기회를 허락하지 않는다. 가상화폐 시장을 ‘흙수저 세대의 마지막 사다리’로 여기는 현상은 한탕주의란 말로 쉽게 설명할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투자금은 지난달 17일 120만원으로 늘었다. 분산투자를 시작했다. 비트코인을 30만원어치만 남기고 나머지 90만원으로 알트코인(비트코인 이외의 가상화폐)을 구입했다. 비트코인보다 호환성을 높인 플랫폼형 가상화폐 B코인, 유통에 적합하게 설계된 C코인에 각각 30만원씩 투자했다. 나머지 30만원은 A사보다 다양한 코인을 거래할 수 있는 D사로 옮겼다. 당시 가상화폐 커뮤니티에서 가장 많이 거론되던 E코인은 A사에서 구입할 수 없었다.

분산투자의 효과는 곧바로 나타났다. 가격이 80만원일 때 구입한 B코인은 해를 넘기면서 급등하기 시작했다. 비트코인보다 가파른 상승세가 나타났다. B코인의 지난 10일 가격은 230만원을 넘어섰다. 상승률 280%. 투자원금 100만원은 357만원까지 늘어났다.

가상화폐의 '악재'는 바로 나였다

폭락은 그 다음 날부터 시작됐다. 박상기 법무부 장관이 거래소 폐쇄를 처음 언급한 지난 11일 투자금은 170만원대까지 추락했다. 제동이 풀린 하락장에서 매도 타이밍을 잡을 수 없었다. '지금 팔았다가 반등하면 어쩌지'하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이성은 탐욕에 패한 뒤였다. 정부는 연일 거품 붕괴 가능성을 언급하며 '신호'를 보냈고, 투자자들은 규제를 반대하는 국민청원으로 응수했다. 열풍은 탐욕으로, 탐욕은 광기로 바뀌었다.

지난 13일 서울에서 열린 가상화폐 개발자와 투자자의 만남 행사는 광기를 증명하는 사건이 됐다. 이 행사를 앞두고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N사와 업무제휴가 예정돼 대폭 상승이 예상된다'는 소문이 돌았다. 포털사이트 네이버, 게임개발사 NC소프트 같은 업계 강자들이 'N사'로 언급됐다. 이 가상화폐 가격은 불과 하루 동안 200%까지 상승했다. 하지만 업무제휴설은 허위였고, 가격은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갔다.

혼란을 틈타 '큰손'은 '개미'의 투자금을 흡수했다. 거래소는 막대한 수수료로 사세를 키웠다. 모든 가상화폐 가격은 연일 10% 포인트씩 하락했다. CBOE 옵션 만기일인 지난 17일부터 낙폭은 30%대로 커졌다. 내 투자금은 87만원까지 떨어졌다. 이쯤 되니 가상화폐의 악재로 여겨졌던 정부 규제 방침이 기존 투자자들 사이에서 최악을 막아준 '안전장치'로 평가되고 있었다.

투자를 끝내기로 한 24일 투자금을 확인했다. 105만원. 한때 '사이판 가즈아∼'를 되뇌며 여러 차례 수정한 여행계획은 다시 제주도로 돌아왔다. 수익금 5만원은 제주도에서 먹을 두세 끼 밥값쯤 된다. 그나마 손해 보지 않은 게 위안거리였다.

당연한 결과였다. 투기자본은 산업 성장의 '필요악'으로 잠시 나타날 수 있지만 낙관적인 미래까지 제시할 순 없다. 블록체인의 진가는 구성원이 집단을 형성해 가상화폐를 거래 수단으로 활용할 때 발휘된다. 지금의 가상화폐 시장은 전자지갑 주소를 생성해본 적 없는 투자자가 대부분이다. 왜곡된 투자 형태로는 산업 성공을 장담하지 못한다. 블록체인과 가상화폐의 가능성을 저해하는 요소는 기술보다 횡재에 시선을 고정한 투자자에게 있을지도 모른다.

글=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 그래픽=공희정 기자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