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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인재 키우는 명성교회 장학위원회… 농어촌 목회자 자녀들 위해 34년간 숙소·식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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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명성교회 서울장학관에 거주하는 학생들이 지난 23일 장학관 및 해외장학금 수혜 선배들을 만나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강민석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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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성교회 장학위원회(위원장 이종순 장로)는 지난 34년간 장학관을 통해 농어촌 목회자 자녀들의 학업을 적극 지원하면서 많은 열매를 맺었다. 이 교회의 장학사업은 1984년 시작됐다. 교회 개척 초기였음에도 교회 인근 주택 한 채를 매입해 10명의 농어촌 목회자 자녀들에게 숙소와 식사를 제공한 것이다.

“당시 김삼환 담임목사님이 농촌 가정에서 혹독한 가난을 경험하며 성장했고 교회의 도움을 받아 어렵게 신학을 공부해 목회자가 되셨기에 빚을 갚는다는 심정으로 시작하셨을 거라 생각합니다.”

이종순 장로는 “설교를 통해 천연자원이 부족한 우리나라가 발전하려면 인재를 키우는 길밖에 없다고 늘 들었고 이 때문에 장학사업이 교회 개척 4년 만에 실천된 것으로 안다”며 “서울에서 시작된 장학관이 현재 전국 7개 도시에 계속 세워져 지금까지 4800여명의 학생이 큰 도움을 받았다”고 소개했다.

전국 7곳에 설립된 명성장학관

지방 장학관 1호는 전남 목포에 설립됐다. 목포 주변의 섬 출신 학생들은 서울 유학은 엄두도 못 내고 목포까지 나와 공부하는 것만으로도 큰 부담이었다. 사례비가 거의 없는 섬 교회 교역자들은 등록금 걱정뿐 아니라 비싼 하숙비나 자취방 월세를 걱정해야 했다. 무료 장학관은 이 문제를 단번에 해결해줬다. 이어 광주 전주 순천에 장학관이 순차적으로 설립됐고, 대구와 부산으로도 확대됐다. 이렇듯 명성장학관은 현재 7개 도시에 전체 수용인원 230명 규모로 성장해 연간 4억여원의 교회지원을 받고 있으며 그동안 장학관에만 120억원의 예산이 지출됐다.

장학관에서 공부한 수많은 학생이 목회자, 교수, 외교관, 변호사, 의사 등 다양한 분야에서 사회 지도자로 활동하고 있는 것은 장학위원회의 큰 보람이다.

세계로금란교회 주성민 목사는 명성교회 장학관을 잊지 못한다. 주 목사는 “시골교회에서 목회했던 아버지와 어머니가 모두 돌아가신 뒤 서울로 올라와 신문을 돌리고 독서실 총무를 하며 어렵게 지낼 때 명성교회의 배려로 장학관에서 2년간 머물 수 있었다”며 “힘들었을 때 이곳에서 믿음을 재충전하고 신학교에 입학해 목회자로 거듭났다”고 회고했다.

제1기 서울장학관 출신으로 미국으로 유학을 다녀 온 우주호(51·한양대) 교수도 “성악가로 자리매김하고 활동할 수 있기까지 교회의 많은 도움을 받아 늘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했다. 101명의 대학생이 생활하는 서울명성장학관 이선희(54) 사감은 “영양사와 조리사를 두고 맛있는 식단을 짜는 데 주력한다”며 “전액 무료로 운영되는 만큼 가정형편이 어려운 대학생들에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입소 2년 차인 노태진(28·세종대)씨는 “규칙적인 생활과 예배로 신앙성장에도 유익이 되고 있다”며 “또래 친구들과 토론도 많이 하고 다양한 정보도 공유할 수 있는 장학관 생활에 매우 만족한다”고 했다.

국내외 장학사업에 총 180억여원 지원

명성교회 장학위원회가 장학관 운영과 함께 관심을 쏟아온 사업은 국내외 장학금 지원이다. 최소한 학비를 마련하지 못해 학업을 중단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여겨 1985년 교인 자녀들부터 시작해 사회적으로 점점 지원범위를 넓혀 갔다.

“첫해 12명의 학생에게 장학금을 지급했는데 33년이 지난 지금 집계해 보니 1만명 이상에게 180억여원의 장학금을 지급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여기에 장학관 구입비는 포함되지 않았고요. 이를 위해 요즘도 매년 6억원 이상 장학금 예산을 세우고 있습니다.”

장학사업 실무를 맡고 있는 정인용(58) 집사는 “교회는 복음전파와 해외선교도 열심히 해야 하지만 기독교 신앙을 갖고 정진해 나가는 청소년과 대학생에게 장학금을 통해 자신감과 긍지를 심어주는 것 또한 중요한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명성교회 장학선교회 장학금은 모두 세 종류다. 국내장학금은 연 2회 교인·교직원·학업 중인 교역자 자녀를 대상으로 한다. 또 어려움에 직면한 사회적 약자들을 찾아 수시로 장학금을 지원하기도 한다. 용산참사 가족, 다문화가정 등에도 전달했다.

해외장학금의 경우 1987년 처음 장학생을 선발했다. 현재는 미국 독일 영국 이스라엘 프랑스 등에서 공부 중인15명의 전도유망한 유학생에게 장학금을 보내고 있다. 43명의 선교사 자녀들에게도 매년 두 차례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다.

김삼환 목사의 아호를 딴 은파장학회는 김 목사의 외부강사비와 집안 경조사비 등을 모아 전달하는 순수 개인 장학금으로, 대학생을 선정해 연 2회 지급하고 있다.

이스라엘 히브리대학에서 정치학을 전공하고 예루살렘에서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이강근(54·유대학연구소장) 박사는 “2003년부터 5년간 해외장학금을 받았기에 학문적 토대를 튼튼히 닦을 수 있었다”며 “큰 도움을 받은 만큼 나 역시 이스라엘로 유학 온 후배들의 공부에 도움을 주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명성교회가 유독 장학사업에 정성을 쏟는 이유는 김 목사가 설교할 때 자주 쓰는 예화에서 찾을 수 있다. 김 목사는 안동 경안성서신학원 재학 시절, 개학에 맞춰 어머니가 싸주는 송편을 학교에 갖고 왔다. 음식이 귀하고 항상 배고팠던 시절이라 사물함에 넣어두고 혼자 먹으려 했다고 한다. 그런데 6명이 기숙사 한 방을 쓰고 있어 혼자 몰래 먹는 기회를 놓쳐 버렸고 결국 송편은 다 상하고 말았다. 이때 김 목사는 “혼자 먹는 것은 기쁨도 없고 결국 손해만 본다”는 단순한 진리를 깨달았고 ‘나눔과 섬김, 사랑의 목회’를 지향하게 됐다.

이웃과 고통 나누는 목회

명성교회는 장학사업 외에도 1000여곳의 농어촌교회 및 미자립교회를 지원하고 있다. 2012년에는 서울 연남동에 거처를 마련해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기증했고, 2010년 아시아 최초로 민영교도소인 소망교도소 설립을 주도했다. 또 국내 안동성소병원과 영양병원을 운영하는 것을 비롯해 2002년에는 에티오피아에 최신 시설을 갖춘 명성기독병원(MCM)을 설립했다. 한국 의료선교의 새 장을 열었다는 점에서 ‘에티오피아의 세브란스 병원’으로 불리고 있다.

“주변에는 사회적 약자와 어렵고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이 참 많습니다. 명성교회는 이들과 함께 울며 사랑을 나누는 교회가 되고자 합니다.”

이 장로는 “우리 교회는 김하나 담임목사를 중심으로 장학사업은 물론 선교와 봉사, 나눔의 사역을 꾸준히 이어갈 것”이라며 “2018년에는 탈북자를 비롯해 다문화가정과 알코올·도박 중독자를 돕는 일에도 신경 쓸 것”이라고 말했다.

글=김무정 선임기자 kmj@kmib.co.kr, 사진=강민석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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