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이명희] 문재인정부의 폴리크라트 기사의 사진
기획재정부에는 3환이 있었다. 이들의 공통점은 일을 무척 열심히 한다는 것이다. 출세 지향적이고 정무감각도 뛰어나 윗사람 말을 맹종한다. 상사들에겐 이쁨 받는 직원이다. 하지만 이들 밑에서 일하는 직원들은 괴롭다. 만기친람(萬機親覽)에 닦달하고 폭언도 서슴지 않는다. 최악의 상사다. 그중 한 명이 박근혜정부 때 장관을 지낸 J씨다. 그의 별명은 주님이다.

요즘 관가에는 이 장관의 이름을 넣은 ○○○ 시리즈가 회자된다. ‘친절한 ○○○’ ‘차라리 ○○○’ ‘영어 잘하는 ○○○’ ‘일 못하는 ○○○’ 등이다. 여기에 거론되는 장관들의 면면을 보면 왜 이런 말이 도는지 고개가 끄덕여진다. 문재인정부에서 정통 관료들은 힘을 못 쓴다. 시장경제를 금과옥조로 배운 관료들은 현 정부의 실험적 정책들이 낯설다.

예년 인상률보다 두 배로 최저임금을 올리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는 지난 7월 최저임금위원회가 일을 저질렀을 때 예견됐다. 기재부가 뒷수습하겠다고 내놓은 정책이 3조원의 일자리 안정자금 지원이다. 그렇다고 아무한테나 세금을 퍼줄 수 없어 짜낸 묘안이 고용보험과 의료보험 등 4대 보험에 가입한 종업원 30인 미만 사업자다. 지금까지 이 자금을 신청한 곳은 1%도 안 된다. 직원 1인당 월 13만원 지원금을 받겠다고 4대 보험에 가입하는 김밥집 사장이나 편의점 사장이 얼마나 있겠는가. 올 들어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한 해고가 현실화되자 상가임대료 인하, 신용카드 수수료 인하 등의 땜질 정책이 쏟아진다. 대기업들에도 협력업체 납품단가를 인상하라며 압박하고 있다. 근본 해법은 나와 있는데 이걸 안 하겠다고 돌려막기를 하는 꼴이다.

강남 집값을 잡겠다며 정치권은 지난해부터 부동산 보유세 인상에 군불을 땠다. 그래도 버티던 경제부총리는 백기를 들었다. 세계적 추세에 따라 보유세(종합부동산세+재산세)를 올리면 거래세(양도소득세+취득·등록세)는 낮춰야 한다면서도 4월부터 양도소득세를 중과하겠다고 한다. 모순이다. ‘김동연 패싱’은 없다고 하지만 결국은 청와대와 정치권에 끌려가는 모습이다. 노무현정부 시절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을 성공적으로 이끌어내 현 정부가 다시 모셔온 통상전문가는 “한·미 FTA도 폐기할 수 있다”고 했다. 여당 대표의 말에 코드를 맞추는 것인지, 트럼프 미 대통령의 레토릭을 따라하는 것인지 헷갈린다. 오죽했으면 ‘영혼 없는 공무원’들이 정권 바뀌었다고 180도 뒤집는 정책을 만들면서 자괴감이 든다고 푸념하겠는가.

그나마 늘공(늘 공무원)은 ‘가보지 않은’ 정책의 부작용을 알고 노무현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를 봤기 때문에 신중하다. 하지만 교수나 정치인 출신 장관과 청와대 참모들은 앞뒤 가리지 않고 ‘무개념’ 발언을 쏟아낸다. 보건복지부 장관은 지난해 말 정치권이 어렵게 합의해 통과시킨 월 10만원 아동수당을 상위 고소득 10%에게도 지급하도록 뒤집겠다고 한다. 상위 10% 고소득자를 가려내려면 행정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노인 대상 기초연금을 소득 하위 70%에게 지급하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핑계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은 수수료 부담을 파격적으로 낮춘 ‘소상공인 전용 카드’를 도입하고 그만큼 줄어든 카드사 이익을 공적자금으로 보전해주겠다고 한다. 최저임금을 세금으로 지원해주는 것도 모자라 또 국민들의 호주머니를 털겠다는 것이다. 국가재정은 어떻게 되든 안중에 없다. 법무부 장관은 가상화폐 거래소를 폐쇄하겠다고 한다. 국내 거래소만 막으면 가상화폐 거래가 사라질 거라고 순진하게 생각하는 것일까.

반(反)시장 정책을 밀어붙이는 청와대 386 참모들에게 “경제 공부 좀 하라”고 꾸짖고 주머니에 사표 넣고 다니며 할 말은 하던 노무현정부 시절 관료들이 자주 생각나는 요즘이다. 이 정부에는 폴리크라트(정치관료)만 넘쳐난다.

mhee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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