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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산책] 파리? 트럼프타워 앞에 세우라고

[미술산책] 파리? 트럼프타워 앞에 세우라고 기사의 사진
제프 쿤스 ‘튤립 부케’
노랑 주홍 빨강 파랑… 색색의 튤립이 활짝 피었다. 열두 송이의 튤립 부케다. 젤리처럼 달콤하고, 장난감처럼 가뿐하다. 알록달록한 막대풍선을 꼰 듯하지만 실은 육중한 스테인리스스틸이 소재다. 무게는 자그마치 35t. 높이도 12m나 된다. 튤립 꽃다발을 움켜쥔 손은 뉴욕의 ‘자유의 여신상’을 패러디했다. 횃불 대신 튤립이 들렸다.

톡톡 튀는 이 조각은 미국의 유명작가 제프 쿤스(62)가 파리시를 위해 디자인한 ‘튤립 부케’라는 작품이다. 쿤스는 2016년 “파리 연쇄테러의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시민들에게 희망을 선물하고 싶다”며 꽃다발 조각을 시에 제안했다. 작가가 ‘창의적 아이디어’를 기증하자, 미국의 패트론들이 제작비 350만 유로(46억원)를 조성했다. 현재 독일에서 제작 중인 작품은 거의 완성돼 목적지(팔레 드 도쿄 광장)로 옮겨질 참이었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프랑스의 문화예술인 24명이 ‘설치 반대’를 주장하고 나섰다. 영화감독 올리비에 아사야스, 건축가 도미니크 페로, 설치미술가 크리스티앙 볼탄스키 등은 “쿤스가 세계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작가인 건 틀림없지만, 파리 테러 희생자를 기리는 조형물이라면 프랑스 작가들에게도 기회가 주어졌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테러 발생지점과 상관없는 명소에 조각이 설치되는 것도 납득할 수 없으며, 예술적 건축적으로도 ‘쇼킹할 뿐’이라고 입을 모았다. 여성미술가 타이나 모우라드는 “뉴욕 트럼프타워 앞에 세우면 딱 맞다”고 일침을 놓았다.

이에 프랑스 주재 미국대사의 제안을 받아들여 조각을 설치하려던 파리시는 고민에 빠졌다. 미국 측도 마찬가지다. 미국독립 100주년(1876년) 때 프랑스로부터 ‘자유의 여신상’을 선물받았으니 ‘화답의 조각상’을 보란 듯 건네려던 계획은 암초에 부딪혔다. 과연 어떤 결론이 날까?

이영란 미술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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