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래 칼럼] 평창 너머 평화공존, 비록 멀고 험해도 기사의 사진
‘단일팀 구성=親통일론’은 단순화의 오류…
이를 비판한 이들에 대한 과도한 폄하는 잘못 짚은 것일 뿐

대회 끝나면 한반도는 다시 대립·갈등구조로 회귀할 수도 있으나
그럼에도 평화공존 향한 꿈은 꺾일 수 없다


지지난 주말 평창 동계올림픽 개최지인 평창과 강릉의 주요 경기장과 관련 시설을 견학할 기회가 있었다. 가는 곳마다 관계자들은 막바지 점검과 시설 보완에 여념이 없어 보였다. 개막식은 다음 달 9일이지만 이미 분위기는 한껏 달아올라 있었다.

올림픽 전용차로도 인상적이었다. 평창과 강릉 등의 경기장과 경기장을 잇는 도로마다 청색의 전용차로를 둬 선수단과 관계자의 원활한 이동을 약속하는 듯했다. 주요 길목마다 대회 엠블럼이며 마스코트인 수호랑 등이 포진해 있고, 강릉시내 곳곳에는 오륜마크로 만들어진 가로등이 밤을 지새우며 홍보의 빛을 밝혔다.

지역 음식점들도 들뜬 분위기다. 평창의 메인스타디움 부근 한 식당 풍경도 그랬다. 가격은 좀 부풀려진 듯했지만 활기가 넘쳤다. 외국인손님을 의식한 듯 영어표기 메뉴판도 벽에 큼지막하게 붙었다. 눈길을 끈 것은 메뉴판 옆에 굵은 글씨로 쓴 ‘같은 메뉴로 통일하시면 빠르고 좋습니다’란 문구다.

씁쓸했다. 각자 먹고 싶은 대로 다른 것을 따로따로 주문하면 곤란하니 적당히 한 메뉴로 하라는 건 식당의 오만이다. 더구나 올림픽은 인종 사상 문화 종교 등이 다른 이들이 한데 모여 벌이는 인류의 잔치가 아닌가. 여럿이 함께 간 식당에서 메뉴를 국밥으로 통일하자는 식의 주장이 통하는 시대는 우리 사회에서도 지난 지 오래다.

별것 아닌 식당의 주문 문구가 내내 마음에 걸렸던 것은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단일팀 구성을 둘러싼 논란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정부의 일방주의는 분명 문제였다. 뿐만 아니라 정부의 태도를 문제 삼은 이들에 대한 일부 국민들의 과도한 해석은 문제의 본질을 잘못 짚은 것이라고 본다. 정말이지 ‘단일팀 구성=친(親)통일론’이란 단순화의 오류일 뿐이다.

남북이 대립하고 있고 최근 들어 그 강도가 격심해지고 있는 마당에 절실한 것은 통일보다 남북의 평화공존이다. 아무리 통일이 우리의 소원이라고 할지라도 지금 당장 통일을 말하는 것은 한쪽이 다른 한쪽을 굴복시키겠다는 것을 뜻할 뿐이다. 우선은 남북이 어떻든 평화공존을 꾀해야 한다. 그것은 중지를 모으고 절차를 중시하는 데서 출발해야 맞다.

일각에서는 단일팀 구성 과정을 탓하는 여론에 대해 ‘통일에 무관심하다’거나 심지어 ‘반통일론’으로 내몰기도 한다. 이는 그야말로 이분법적인 논리다. 정부 비판의 핵심은 성과주의 지양, 다양성 중시, 개인 존중 등에 있다. 그것들은 되레 평화공존을 추구하는 핵심가치다. 통일론만 앞세우면 평화공존의 절실함은 뒷전으로 밀릴 수 있다.

더 염려되는 것은 평창올림픽을 ‘평양올림픽’이라고 비아냥거리는 주장이다. 북한이 뒤늦게 대회 참가를 하면서 선수단은 겨우 46명인데 응원단 예술단 등은 수백명에 이르니 그야말로 꽃놀이패가 따로 없고,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꼴이라고 비판한다. 하지만 그런 북한의 행보는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에서도 있었고 새롭지도 않다.

북한의 선전공세가 분명하다. 문제는 효과다. 어쩌면 이번 대회를 계기로 수많은 북측 인사들이 남측에 와서 보고 느낀 후 있을 수 있는 마음의 동요라는 역효과는 더 클 수도 있다. 이 점과 관련해선 지난 12월 18일 국민일보 초청으로 ‘북한의 종교실태’에 대해 강연한 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공사의 증언을 소개하고 싶다.

“북한은 1980년대 말 남한의 기독교단체를 포섭할 목적으로 평양에 봉수교회와 장충성당을 짓고 당성 높은 여성들을 선발해 교인으로 둔갑시켰다. 그런데 처음에는 시늉으로만 예배하고 찬양을 부르던 그들이 차차 진짜 믿음을 받아들이게 됐다. 이에 북한 당국은 깜짝 놀라 그들을 철저히 감시하는 한편 종교시설 건축도 기피하게 됐다.”

‘평양올림픽’이 모처럼 마련된 남북 대화의 물꼬에 대해 북한을 안심시키려는 전략적 슬로건이 아니라면 자제하는 게 맞다. 평창 너머에 평화공존의 길이 있기 때문이다. 그 길이 비록 멀고 험해도 반드시 가야 할 길이라면 평창을 우리의 슬로건으로 삼아야 옳다. 남북은 접점이 다양해지고 많아질수록 남쪽보다는 북쪽의 변화가 더 크게 나타날 터다.

대회가 끝나면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다양한 협상 테이블이 마련되기보다 다시 이 땅은 대립·갈등구조로 회귀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평화공존을 향한 꿈은 꺾일 수 없다. 눈높이를 높이고 비전을 세워야 제대로 된 미래가 열린다. 다양성 존중은 시대적 사명이요, 통일보다 평화공존에 대한 갈망이 한반도에 더 절실한 지혜다.

우리의 상황은 지엽적이고 편파적인 주장에 휘둘릴 만큼 한가하지 않다. 평창 너머를 바라보자.

조용래 편집인 jubi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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