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동 칼럼] 올림픽史에 평창 어떻게 남을 것인가 기사의 사진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 구성 과정에서 미흡한 점이 드러났고,
젊은 세대 주장도 존중돼야 마땅하다

하지만 남북이 하나 된다는 가치 실현하기 위한
작은 발걸음이라는 슈뢰더 충고 귀담아들을 만해


‘올림픽 이념의 목표는 스포츠를 인간의 존엄성 보존과 관련된 평화로운 사회 건설을 증진하고 인류의 조화로운 발전에 기여하는 것이다.’ 올림픽 헌장 중 한 구절이다. 올림픽을 여는 근본적인 이유가 평화와 인류 번영에 있다는 얘기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1896년 제1회 아테네 대회부터 이 원칙을 유지하려고 무던히 애썼다. 그래서 가장 심혈을 기울인 것 중 하나가 분단국의 단일팀 구성과 동시 입장이었다. 지구촌의 평화 분위기를 상징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이벤트이기 때문이다.

통일되기 이전 서독과 동독의 스포츠 교류사가 그렇다. 서독과 동독은 1955년 IOC 중재로 올림픽 단일팀을 만드는 데 합의했다. 이듬해 코르티나 담페초 동계 대회에 처음 단일팀으로 출전한 뒤 56년 멜버른 하계 대회, 60년 스쿼밸리 동계·로마 하계 대회, 그리고 64년 인스부르크 동계·도쿄 하계 대회에 잇따라 하나의 팀으로 참가했다. 냉전의 엄혹한 시기에도 활발한 스포츠 교류로 통일 독일로 가는 발판을 마련한 셈이다.

바통을 이어받은 나라는 남북한이다. 모든 종목에 단일팀을 구성한 동·서독과 달리 남북은 공동 입장으로 물꼬를 텄다. 2000년 시드니 하계 대회를 시작으로 2004년 아테네 하계 대회, 2006년 토리노 동계 대회로 이어졌다. 남북한 선수단은 ‘COREA’란 이름으로 흰색 바탕에 푸른 한반도가 그려진 ‘한반도기’를 들고 입장했다. 12년이 흘러 평창 동계 대회에서 다시 한 번 동시 입장이 성사됐다.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도 구성됐다. 올림픽 사상 첫 남북 단일팀이 탄생한 것이다.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은 “올림픽 스포츠 통합의 힘을 보여주는 위대한 상징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런데 정작 국내 분위기는 심상찮다. 축제 분위기보다 동시 입장, 단일팀 등을 놓고 아직도 갑론을박이다. ‘평화올림픽’과 ‘평양올림픽’이라며 진보·보수 진영 간 신경전도 펼쳐졌다. 평창올림픽을 바라보는 시각이 극명하게 엇갈리고 있다. 언론들이 시드니올림픽 동시 입장을 두고 ‘남북 스포츠 교류 활성화는 사회·문화 교류 확대로 이어질 수 있으며 남북한의 진정한 화해와 교류의 길로 가는 것이 될 것’이라고 논평했던 당시와는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그만큼 예전에 비해 북한에 대한 인식이 크게 나빠졌다는 방증이다. 불과 한 달여 전만 해도 북한의 잇따른 핵·미사일 도발로 조성된 군사적 긴장을 걱정하며 전전긍긍했던 현실을 보면 충분히 이해가 간다. 공정함에 대한 피해의식이 커지면서 일방적 결정으로 이뤄진 단일팀 논란도 부정적인 측면을 부추겼다. 선수들과 소통하며 겸손한 자세로 이해를 구하는 노력이 부족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일부 정치인들의 태도는 도를 넘었다. ‘평양올림픽’이라는 말을 서슴지 않거나 단일팀 구성을 둘러싼 논란을 집중 부각시키는 등의 공세는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북한 선수단과 대규모 예술단이 온다고 해서, 개막식에 한반도기를 앞세우고 공동 입장한다고 해서 이를 평양올림픽이라 할 수 없다. 올림픽에 이념을 덧칠해 소모적 색깔 논쟁을 벌이는 것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단일팀 문제도 잘못 알려진 점이 있다. 다른 구기나 단체 종목과 달리 아이스하키는 선수 교체에 횟수 등의 제한이 없다. 육체적으로 워낙 격렬한 경기라 한번 링크에 들어가면 2분 이상을 뛰기 힘들어 수시로 선수를 바꾸어야 한다. 북한 선수 3명을 출전시키더라도 예선 3경기마다 변경되는 엔트리에만 포함된다면 우리 선수 모두가 경기에 나설 수 있다는 얘기다. 방한 중인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독일 총리는 남북 단일팀을 놓고 불거진 2030세대 등의 비판에 대해 “젊은 세대 주장도 물론 존중해야 하지만, 단일팀이 남북이 하나가 된다는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작은 발걸음이라는 점을 상기하고 성찰해보면 좋을 것 같다”고 충고했다. 귀담아들을 만하다.

88년 서울올림픽은 동서 냉전으로 쪼개진 지구촌을 하나로 연결하는 성과를 거뒀다. 이전까지 ‘반쪽 올림픽’이 서울 대회를 통해 진정한 평화올림픽으로 승화된 것이다. 30년 만에 한국에서 열리는 이번 올림픽도 남북이 대화와 화해 복원의 실마리를 마련했다는 평가를 훗날 받았으면 한다. 나아가 스포츠를 통한 세계 평화와 인간 번영이라는 올림픽 정신을 실현한 무대였다고 올림픽 역사에 기록되길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념 대결보다는 장기적 호흡으로 서로 다가가야 한다. 지금 상황이 어렵고 여러 도전이 있다고 하지만 작은 노력이 모여야 하나의 큰 흐름으로 갈 수 있는 법이다. 평창, 이제 9일 남았다.

김준동 논설위원 jdkim@kmib.co.kr jd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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