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김혜림] 수요일은 따뜻했으면… 기사의 사진
‘수요일은 비도 눈도 오지 말고, 너무 덥지도 춥지도 말고…’ 이런 생각을 하곤 합니다. 하지만 한여름에는 땡볕이 내리쬐고 폭우가 쏟아지기도 합니다. 겨울에는 칼바람이 몰아치고 눈이 오기도 하지요. 지난주 수요일 서울의 체감온도는 영하 20.7도였습니다. 현장을 누비던 시절 정무2실(여성가족부 전신)과 여성단체를 맡고 있던 저는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이하 정대협)를 취재하게 됐습니다. 거기서 뜻밖에 대학 시절 은사를 만났습니다. 윤정옥 정대협 공동대표. 그는 수업시간에 간혹 소란스러워도 얼굴만 붉히는, 소녀 같은 분이셨는데….

1943년 당시 17세로 이화여전 1학년생이던 그는 학교에서 강제로 ‘정신대 자원서’에 지장을 찍었습니다. 그의 부모는 그를 자퇴시켜 금강산 인근 온정리 마을로 피신시켰습니다. 전쟁이 끝난 뒤 “남자들은 돌아왔는데 여자들은 돌아오지 않았다”는 사실이 늘 그의 목에 가시처럼 걸렸습니다. 교수였던 그는 방학이 되면 사비를 털어 또래들의 흔적을 찾아 나섰습니다. 그래서 또래 소녀들이 당한 만행을 이 땅(1981년)과 국제사회(1988년)에 알렸습니다.

한 여성의 ‘양심적인 책임감’으로 세상에 드러난, 전쟁 중에 조직적으로 행해진 성폭력에 대해 가해자인 일본은 외면했습니다. 피해자인 소녀들의 조국은 눙치려 했습니다. 1965년 박정희정권은 한·일협정을 맺고 식민지 수탈에 대한 포괄적 배상을 받았습니다. 정신대는 물론 위안부에 대한 언급은 찾기 어려웠습니다. 2015년 박근혜정부가 ‘최종적 불가역적’인 종결을 선언한 위안부 합의는 또 어떤가요. 위안부 할머니들이 요구한 것은 일본의 공식적인 사과와 법적 배상입니다. 박근혜정부는 “배상이 아니라 마음의 상처 치유를 위한 기금”을 받고 소녀상 이전까지 약속했습니다. 문재인정부는 위안부 합의의 문제점을 밝혀냈지만 그뿐이었습니다.

이제 위안부 피해자 생존자는 31명뿐입니다. 일본은, 또 정부는 고령인 이들이 세상에서 사라지기만을 기다리는 걸까요. 1992년부터 매주 수요일 열리는 집회에는 위안부 할머니들의 억울함을 가슴에 품은 10·20대들, 그리고 외국인들도 적지 않게 참여하고 있습니다. 31일에는 ‘일본군 성노예 문제 해결을 위한 1320차 정기 수요시위’가 열립니다. 일본의 사죄와 배상이 이뤄지지 않는 한 수요집회는 이어질 것입니다. 아무리 덥고 추워도.

글=김혜림 논설위원 겸 선임기자, 삽화=이영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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