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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풍향계-이영주] 화재 참사 땜질처방으론 못 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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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은 영악하다. 우리가 잊을 만하면 어김없이 자신이 얼마나 위험하고 무서운 존재인지 확인시키듯 대형 화재로 나타나곤 한다. 하지만 지난달부터 우리가 겪은 화재들은 단순히 화재의 위험성을 각성시키는 것을 넘어 공포와 충격 그리고 슬픔을 주었다. 이와는 반대로 우리는 너무 순진하다. 대형 화재를 겪을 때마다 온 국민이 안전을 제대로 챙기지 못한 것을 자책하고 분노하기도 하며, 안전을 위해 무엇이든 하라고 재촉하고, 무엇이든 할 것처럼 안전의 중요성에 전적으로 공감하면서도 그 시기가 지나면 다른 대형 화재가 발생할 때까지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화재 위험에 경각심도 화재 안전을 위한 노력도 사라진다.

이러한 과정의 반복 속에서 지난해 말부터 최근까지 대형 화재 사고가 잇따르고 있다. 단순히 재산 피해로 그치는 게 아니라 수많은 생명을 앗아갔다. 안타까운 것은 대형 화재의 발생 원인과 피해 확대 과정이 우리가 그동안 경험하거나 인지하지 못했던 원인과 과정이 아니라는 점이다. 바꾸어 말하면 사전에 충분히 예방하고 대비만 했더라면 충분히 안전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에는 최초 발화 이후 신고 시점까지 상당 시간이 지연된 점, 가연성 외장재로 인한 연소 확대, 설치돼 있는 피난통로가 제대로 확보되지 못한 점, 소방시설의 부실한 유지관리 등이 원인이었다. 최근 발생한 밀양 세종병원 화재는 불법 증축에 따른 화재 위험 증가, 부족한 병원 근무 인력, 증축 과정에서의 방화구획 등에 대한 부실 등이 피해 확대 요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이런 요인들을 살펴보면 우리가 그간 다른 화재에서 문제시됐던 이유와 크게 다르지 않으며, 결국 이러한 반복되는 원인과 피해 확대 요인을 우리는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우리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규제를 강화하는 데 초점을 맞춰 왔다. 서둘러 대책을 마련하고 규제를 강화하는 것도 좋지만 근본적인 문제의 파악 그리고 실효성 있는 방안을 모색하기 위한 충분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우리는 항상 대형 화재가 발생하면 근본적 해결을 위한 검토보다 가시적인 대책을 내놓기에 바빴다. 2014년 21명이 사망한 장성 요양병원 화재 사건을 계기로 규모와 상관없이 모든 요양병원의 스프링클러 설치를 의무화했다. 하지만 이때 다른 의료시설과 병원들에 대한 재실자 특성, 화재 위험 등까지 살펴보고 스프링클러 설치를 확대했더라면 어땠을까. 2015년 의정부 도심형 생활주택 화재 이후 가연성 외장 단열재 사용 제한을 의무화하면서 이전에 가연성 외장 단열재로 지어져 사용되고 있는 건물에 대한 대책도 제시했더라면, 또는 외장 단열재뿐 아니라 내장 단열재의 위험성에도 주목하고 대책을 제시했더라면 제천 화재, 밀양 화재에서 인명피해를 줄일 수 있지 않았을까. 당장 발생한 화재 사고에 대한 대책을 좁게 그리고 급하게 제시하다보니 근본적인 위험을 저감하고 예방하기에는 한계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제천 화재, 밀양 화재 이후 소방법과 건축법 등 규제는 어떤 형태로든 강화될 것이다. 다만 이전과 같이 눈에 보이는 부분을 땜질하듯 일부 규정만 강화한다면 앞으로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화재에 충분히 대비할 수 없을 것이다. 그때 또다시 지금과 같이 왜 미리 이러한 규제와 정책을 세우지 못했느냐고 한탄할 것이다. 지금부터라도 화재 안전에 관한 법과 규제를 전면적으로 검토하고 부족한 부분과 필요한 부분을 채워나가야 한다. 불필요하거나 효용성이 확인되지 않은 규제도 과감히 없애야 한다. 잔디를 잘 자라게 하려면 잔디에 물과 비료를 잘 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불필요한 잡초를 제거해줘야 하는 것과 같다.

시민들과 사회는 기다려줘야 한다. 빨리 대책을 내놓으라고 질책하기보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제대로 된 규제와 정책이 만들어질 수 있도록 관심을 갖고 기다릴 수 있어야 한다.

이영주 서울시립대 소방방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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