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이기수] 연명의료법을 안착시키려면 기사의 사진
이른바 ‘연명의료법’ 시행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4일부터 본격 시행에 들어간다. 이제 관련 절차와 요건을 갖출 경우 불치병을 앓고 있는 말기 환자나 노쇠로 임종기에 들어선 환자들에 대한 의미 없는 연명의료를 중단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된 것이다.

이 법은 무의미한 연명의료로 인해 생기는 경제적 낭비요인과 법적 시빗거리를 줄여보자는 취지로 만들어졌다. 정확한 이름은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법률’이다.

정부는 최근 3개월간 시범사업을 실시, 개선·보완의 여지가 없는지 살폈다. 여기엔 앞으로 연명의료 관리를 책임질 ‘국가생명윤리정책원’을 중심으로 총 13개 병원이 참여했다.

그간 작성된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9336건, 연명의료계획서는 107건에 이른 것으로 파악됐다. 하지만 이 가운데 실제 임종기 연명의료 중단 결정으로 이행된 경우는 고작 54건에 불과했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자의 0.6%, 연명의료계획서 등록자의 50%만이 연명의료 중단 의사를 실행에 옮긴 셈이다.

고통스러운 임종을 원하지 않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자 가운데 실제 실행한 비율이 1%에도 미치지 못했다는 것은 연명의료법 시행 과정에서 여건이 안 좋아 이행하지 못하는 사례가 많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사실 환자에게 죽음이 임박했음을 알리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보호자(가족)도 대부분 불필요한 고통을 줄 수 있다며 임종이 다가왔다는 사실을 환자에게 알리지 말아 달라고 요구하기 일쑤다.

어디에 문제가 있는 것일까. 가장 큰 이유는 회복불능의 말기 상황에서도 환자를 그냥 고이 보내지 못하는 우리나라 임종 문화에서 찾아볼 수 있을 듯하다. 설혹 성공 가능성이 낮다 해도 해볼 수 있는 것은 원 없이 다 해보고 보내야 하지 않겠느냐는 심리기제가 가족들 사이에 작동, 기적을 바라듯 연명의료에 집착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불필요한 치료로 환자는 물론 가족도 정신적 고통을 겪다가 떠밀리듯 임종을 하는 모습을 주위에서 자주 접한다.

정부의 연명의료법 시범사업에서 이행률이 낮았던 것 역시 이런 심리적 기제가 영향을 미쳤기 때문일 수 있다. 연명의료법이 성공적으로 우리 사회에 안착하려면 무엇보다 죽음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가져갈 필요가 있어 보인다. 특히 말기 상황에서 죽음을 인정하고 무의미한 연명의료 대신 호스피스 완화의료를 선택해 편안하게 임종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들어가는 게 중요하다.

지나치게 복잡한 연명의료법의 서식 규정도 개선이 필요하다. 정부와 국회 모두, 입법 과정에서 자칫 생명경시 풍조를 조장할 수 있다는 비판을 받게 되지 않을까 두려웠던 것일까.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및 연명의료계획서 작성 관련 서식의 분량이 A4 용지로 무려 43장에 이른다. 미국은 이와 반대다. 연명의료 관련 서식은 A4 용지 2장으로 간단하고 의료행위 관련 의사윤리지침은 45장에 이를 정도로 길고 까다롭게 돼 있다.

“이거 어느 의사가 작성하나? 뿐만 아니라 작성하는 순간 10년 동안 보관해야 한다. 그 규정을 어기면 처벌이다.” 최근 노환규 전 대한의사협회장이 연명의료법의 문제점에 대해 온라인 블로그에 올린 글의 일부다. 노 전 회장은 “환자가 자신의 의사를 표현할 수 없는 의학적 상태에서 가족 2명 이상이 연명의료 중단 의사를 똑같이 밝혔다 해도 또 다른 가족이 이의를 제기하면 효력이 없어지게 한 것도 큰 문제”라며 개선을 촉구했다.

대여섯 장짜리 설문조사 작성도 짜증이 나고 귀찮아서 거부하기 일쑤인 게 우리의 현실이다. 연명의료법은 누구든 고통스러운 죽음을 피하고 품위 있고 편안한 죽음을 맞도록 하자는 취지로 만들어진 법이다. 그런 만큼 정부는 하위 법령 개정을 통해 관련 절차와 서식을 간소화하고 더 많은 사람의 참여를 이끌어낼 필요가 있다고 본다.

이기수 의학전문기자 ks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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