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고승욱] 아그레망 기사의 사진
1814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시작한 빈 회의(비엔나 회의)는 외교사절의 의전(protocol)을 처음 명문화한 국제회의다. 회의는 나폴레옹이 멋대로 바꾼 유럽의 국경선을 어떻게 정리할 것인지를 논의하기 위해 소집됐다. 그런데 유럽의 90여개 왕국과 50여개 공국에서 대표를 파견하자 일이 커졌다.

각국의 외교사절단에 포함돼 빈에 도착한 사람이 1만명이 넘었다. 연합군의 주축이었던 러시아와 프로이센은 황제가 직접 나섰고 유럽의 거물들이 경쟁적으로 참여했다. 영국과 몇몇 강대국이 국경선은 나폴레옹 이전으로 돌아간다고 이미 합의했지만 중부유럽은 결정되지 않은 곳이 많았다. 폴란드의 운명이 바뀌었고, 스위스는 영세중립국으로 인정받았다. 신성로마제국이 해체된 자리에 독일연방이 생겨 말 한마디에 웬만한 왕국이나 공국은 통째로 없어질 판이었다.

만찬장에서 누가 상석에 앉느냐를 놓고 대사들끼리 칼싸움을 벌이다가 전쟁으로 비화되던 시대였다. 예민한 문제를 다루려면 새로운 전략이 필요했다. 주최국 오스트리아의 수상 메테르니히는 최고급 포도주가 나오는 화려한 파티로 외교사절들을 달랬다. 그러면서 ‘외교사절의 등급에 관한 규칙’이라는 합의를 이끌어냈다. 외교관을 네 가지 계급으로 분류한 뒤 그에 맞는 대우를 한다는 내용이었다. 계급이 같으면 먼저 부임한 사람이 우선이라는 원칙도 생겼다. 나폴레옹이 엘바섬을 탈출할 때까지 시간만 낭비했지만 외교사에서 빈 회의가 차지하는 비중은 결코 낮지 않다.

현재 국제사회에서 보편적으로 통용되는 룰은 1961년 채택된 ‘외교관계에 관한 빈 협약’이다. 외교가에서 관습적으로 이뤄지던 각종 의전을 명문화한 협약이다. 외교관을 보낼 때 상대국의 동의를 먼저 구하는 아그레망은 9조에 담겨 있다. 하지만 53개 조항에 외교무대의 복잡한 의전을 모두 담을 수는 없다. 상대국을 존중하는 자세가 의전의 핵심일 수밖에 없다.

글=고승욱 논설위원, 삽화=이영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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