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청년] 기적은 누구에게나 찾아옵니다… 의학은 포기하라 했지만 창조주가 지킨 생명

뇌절단 중복장애 성악가 박모세씨

[예수청년] 기적은 누구에게나 찾아옵니다… 의학은 포기하라 했지만 창조주가 지킨 생명 기사의 사진
성악가 박모세(중복장애·오른쪽)씨가 지난달 30일 경기도 수원의 한 카페에서 어머니 조영애(구성성결교회) 집사와 얼굴을 마주보고 얘기하고 있다. 밀알복지재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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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는 태중에 있을 때 이미 사형선고를 받은 아이였어요. 머리에 ‘밑 빠진 독’을 달고 태어나야 할 상황이었죠. 뒤통수에 뼈가 형성되지 않아 머리 안에 있어야 할 뇌가 머리 밖으로 쏟아져 나올 것이란 진단을 듣곤 털썩 주저앉고 말았어요.”

1992년 2월, 임신 4개월 차였던 조영애(54·경기도 용인 구성성결교회) 집사가 한 대학병원에서 들은 소식은 충격적이었다. 담당의사는 “아기는 이미 가망이 없고 산모의 생명까지 위험하다”며 낙태를 권했고, 수술 날짜까지 잡았다. 채 가시지 않은 충격을 뒤로한 채 수술 준비를 모두 마치고 병실에 누워있던 그때, 조 집사는 온몸을 흔드는 듯 한 진동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태동이었어요. 본능적으로 이 생명을 포기해선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차피 죽을 아이라면 열 달을 채워서 세상 빛을 꼭 선물해주고 싶었어요. 돌아보면 그게 하나님의 명령이었던 것 같아요.”

병원에선 난리가 났다. 산부인과 의사들이 전체회의를 열고 다시 낙태를 권했지만 엄마의 결심은 흔들리지 않았다.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며 10개월을 채운 뒤 제왕절개 수술 끝에 박모세(26·중복장애 1급)씨는 태어났다. 그날도 병원에선 난리가 났다. 머리만한 뇌가 뇌막에 싸인 채 밖으로 흘러 나왔다. 호흡을 붙들고 있는 것만도 기적이었다. 조 집사는 당시 의료진과의 대화를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수술하면 희망이 있나요?”

“저희도 이런 경우는 처음입니다. 의학적으론 1%의 희망도 보장할 수 없습니다.”

“이 아이가 수술을 해서 산다면 그건 의학이 한 일이 아니라 신이 하신 일이겠네요. 그럼 우리는 기도할테니 선생님은 최선을 다해 수술해 주세요.”

손주를 위해 불철주야 기도에 열을 올리던 할머니는 아예 교회 한 편에 자리를 펴고 온종일 기도에 매달렸다. 소식을 접한 성도들도 특별기도회를 열며 힘을 보탰다. 작은 핏덩이에 불과했던 모세는 생후 3일 만에 수술대에 올랐다. 하지만 수술을 마친 의료진은 조 집사에게 “대뇌의 70%, 소뇌의 90%를 잘라내 이제 이 아기는 보지도 듣지도 걷지도 말하지도 못하고 온몸에 장애가 너무 극심해 얼마 살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잔인한 통보였다.

‘1%의 희망’을 얘기했던 26년 전 의료진의 판단은 100% 틀렸다. 지난달 30일 경기도 수원의 한 카페에서 만난 박씨는 보고 듣고 전 세계를 누비며 자신의 삶을 노래하는 사람이 돼 있었다. 2013년 1월 평창동계스페셜올림픽 개막식에서 애국가를 부르는 모습이 방송을 탔다. 놀랍고도 감동적인 출생과 역경 스토리가 알려지면서 박씨는 그야말로 ‘모세의 기적’같은 삶의 여정을 지나왔다.

아침마당, 불후의 명곡, 노래가 좋아(KBS), 스타킹(SBS), 휴먼다큐 사람이 좋다(MBC), 희망풍경(EBS) 등 다양한 프로그램에 출연하며 감동을 전했다. 미국 12개 주 초청으로 ‘우간다 장애인학교 건립기금마련 행사’에 참석해 플러튼시 명예시민 증서를 받기도 했다. 천진난만한 표정을 지으며 가느다란 목소리로 인사하던 박씨가 숨을 가다듬고 노래를 시작하는 순간, 지켜보는 이들은 그의 청아한 목소리와 폭발적인 성량에 놀라 절로 엄지를 치켜든다.

숨죽인 채 박씨의 무대를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는 이들도 많다. 무대가 커지는 만큼 박수와 함성도 커졌고 유명세를 타며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하지만 어떤 자리에서든 박씨의 고백엔 변함이 없었다. “죽을 때까지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조 집사는 “모세가 5세 되던 해 구역예배 드리던 날을 잊지 못한다”고 했다. 여느 때처럼 예배를 시작하려고 주기도문을 암송하는데 처음 듣는 목소리가 들렸다. 옹알이밖에 할 수 없었던 아이의 입에서 주기도문이 튀어 나온 것이다. 일곱 살 성탄절 땐 선교원 재롱잔치에서 노래를 부르며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조 집사는 “숨만 붙어 있어도 기적이라 여기던 아들에게 새로운 기적의 씨앗이 움튼 날”이라고 회상했다.

어머니의 이야기를 듣던 박씨는 연신 아이 같은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면서도 노래와 삶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땐 성악가로서의 확고한 소신을 밝혔다.

“노래는 곧 저의 삶이고 제 삶에 없어선 안 될 에너지예요. 기적은 어디에나 누구에게나 찾아옵니다. 포기하지 마세요.”

수원=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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