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 DNA 되살리자] 우리가 블록체인을 포기해선 안 되는 이유 기사의 사진
블록체인은 구성원의 컴퓨터를 사슬처럼 연결한 기술이다. 각 구성원의 컴퓨터마다 분산된 장부는 블록체인 안에서 이뤄진 모든 계약의 체결과 이행을 확인하고 보상체계의 가치를 증명한다. 암호화된 컴퓨터언어로 존재하는 이 보상체계를 ‘암호화폐(가상화폐)’라고 부른다. 사진은 컴퓨터언어를 형상화한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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⑥ 글로스퍼 김태원 대표 “블록체인은 IT 강국 한국에 또 하나의 기회”

가상화폐 같은 ‘노원화폐’ 개발해 상용화
블록체인, ‘흙수저의 사다리’보다 큰 디딤돌
투기서 연구·개발로 시선 돌리면 더 큰 기회


서울 노원구 주민들은 특별한 암호화폐(가상화폐)를 채굴하고 있다. 명칭은 ‘노원화폐’. 묵직한 컴퓨터 장비를 설치할 필요는 없다. 산업용 전기를 낭비할 일도 없다. 이 화폐를 채굴하는 방법은 ‘선행’이다. 봉사활동과 기부, 자원 재활용을 위한 물품 교환을 증명하면 노원화폐를 얻을 수 있다. 단위는 ‘노원’의 영문 이니셜인 ‘NW’. 1NW의 가치는 1원이다. 선행으로 채굴한 화폐는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에 저장된다. 이 애플리케이션을 들고 관내 공공시설과 사업장 107곳을 찾아가면 현금처럼 사용할 수 있다.

가맹점은 식당 카페 편의점 헬스장 부동산 꽃집 안경점 세탁소 산부인과 한의원 등이다. 정문에 노원화폐 로고를 붙인 업소는 선행의 수확물을 들고 찾아온 손님을 반갑게 인사하며 맞는다. 노원화폐로 구청이나 주민센터에서 교육 프로그램을 수강할 수도 있다. 결제는 상품 가격의 10%를 차감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3000원짜리 커피를 마시면 300NW를 애플리케이션으로 결제하고 나머지 2700원을 현금으로 지불하는 식이다.

사회활동으로 채굴하는 가상화폐

노원화폐의 가격은 수백, 수천만원을 호가하는 비트코인과 비교하면 작은 금액이지만 엄연히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생성되는 가상화폐다. 국내 블록체인 스타트업 ‘글로스퍼’의 제안으로 탄생했다. 글로스퍼는 사회활동을 현실의 가치로 환원하는 가상화폐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노원구는 지난 1일 글로스퍼와 출범식을 갖고 이 가상화폐의 채굴과 사용을 정식으로 시작했다.

이렇게 작지만 신선한 시도를 통해 한국의 블록체인산업은 한걸음씩 나아가고 있다. 글로스퍼 김태원 대표는 블록체인으로 사회적 가치의 표본을 만드는 실험을 확장해가는 중이다. 노원화폐 외에도 음악 저작권자의 수익이 배포 과정에서 수수료 등으로 손실되지 않도록 블록체인 기술을 접목하는 방안을 개발하고 있다.

서울 서초구 글로스퍼 사무실에서 4일 만난 김 대표는 블록체인을 4차 산업혁명의 기술로만 보고 있지 않았다. 그는 블록체인을 “직접 민주주의를 구현할 이념”이라고 했다. 블록체인 개발자의 눈에 투기로 집중된 가상화폐 시장의 흐름은 안타까울 수밖에 없다. 김 대표는 “가상화폐 거래소 운영 방식을 보면 마음이 아프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블록체인의 기술이나 미래가치를 보고 도전할 사람이 나타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며 “블록체인 개발 업계도 자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블록체인의 미래를 비관하지 않는다. 김 대표는 가상화폐 투기 과열을 블록체인산업 발전 초기에 일시적으로 나타난 현상으로 진단하고 있었다. 그는 “게임이나 포르노처럼 쾌락의 요소로 출발했던 ‘인터넷 혁명’이 지금은 막대한 규모의 산업으로 성장했다”며 “투기자본은 블록체인산업 초기에 나타난 현상의 하나로 본다. 규제와 제도가 생기면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블록체인이 구현해가는 세상

#1. 인공지능(AI) 자율주행 자동차가 고속도로에 진입한다. AI는 주변 차량과 간격을 계산하며 스스로 주행하고 있다. 탑승자는 간간이 운행 정보만 확인하면 된다. 알고리즘으로 작동되는 AI에 운전대를 맡겨 불안하다. 하지만 주변 차량도 AI라면 걱정할 필요는 없다. AI는 감속·추월 같은 이동 상황을 실시간 서로 공유하며 충돌을 방지한다.

#2. A씨는 ‘인생사진’을 카메라에 담았다. 사진을 널리 알리고 싶다. 하지만 SNS는 저작권을 보호하지 않는다. 그가 사진의 가치를 알리고 저작권도 인정받을 방법은 있다. 생산·유통·소비의 모든 과정을 사진에 기록하면 된다. 사진을 소비할 권리는 지불을 통해서만 승인된다. 합당한 가격이 아니면 소비자 역시 사진을 외면할 수 있다.

#3. B씨는 ‘직구족’이다. 국내에서보다 값싸게 상품을 구입할 수 있는 해외 쇼핑몰을 선호한다. 원·달러 환율, 은행별 수수료까지 따져 구매하는 꼼꼼한 소비자다. 은행과 쇼핑몰에 지불하는 환전·송금 수수료도 아깝다. 판매자와 연락해 중개 과정을 생략한 직거래를 시작했다. 판매자가 거짓 상품을 발송하면 지불을 취소할 수 있다.

이런 일은 더 이상 상상 속에 머물러 있지 않다. 모두 기술로 구현됐다. 미국 정보통신기술(IT)의 강자 구글과 일본 자동차 업체 도요타는 AI 자동차 간의 실시간 운행 정보를 공유해 사고 위험을 줄이는 ‘커넥티드(connected)’ 기술 상용화를 준비하고 있다. 미국 카메라 업체 코닥은 ‘작업증명(POW·proof of work)’ 개념을 도입해 사진 저작권을 보호하는 거래수단을 개발한다.

환전·송금 수수료를 지불하지 않는 거래 방법은 가상화폐 열풍이 몰아치는 과정에서 등장했다. 가상화폐의 시초인 비트코인은 ‘개인 간 공유(P2P·peer to peer)’ 개념을 응용한 컴퓨터 언어로 설계됐다. 비트코인보다 호환성을 높인 플랫폼형 이더리움과 이오스처럼 기술을 집약한 가상화폐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블록체인은 이 모든 것을 실현한 기술이다. 블록체인이란 말은 구성원의 컴퓨터(블록)를 사슬(체인)처럼 연결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 사슬 안에서 구성원은 생산자이고 소비자이며 동시에 중개자다. 블록체인은 ‘공공거래장부’라고도 한다. 하지만 장부는 한 곳에 존재하지 않고 구성원의 컴퓨터 수만큼 분산된다. 블록체인이 4차 산업혁명의 핵심 기술로 평가되는 이유는 여러 곳에 분산된 장부를 동시에 작성하는 운영 원리에 있다.

블록체인의 생산·소비 과정은 구성원에 의해 기록되고 가치가 증명된다. 이 가치를 훼손하려면 모든 구성원의 컴퓨터를, 최소한 절반 이상은 조작해야 한다. 어느 해커도 세계 모든 컴퓨터의 절반을 조작한 적은 없다. 블록체인에서는 가치 조작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계약 체결과 이행 확인, SNS 형태의 의사소통 역시 블록체인 안에서 가능하다. 구성원의 개념을 유권자로 확대하면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선거를 실시할 수도 있다.

블록체인은 그동안 중립적 중개자 역할을 자처했지만 현실에서 우월적 지위를 가졌던 정부, 중앙은행, 기업, 포털 사이트 등 기성 권력을 재편할 힘을 가졌다. 언론·출판·음악·영화 등 모든 형태의 콘텐츠 생산자가 소비자의 선택만으로 평가받을 구조 역시 블록체인을 통해 실현할 수 있다. 블록체인의 목적과 이념이 ‘탈중앙화’로 설명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기회는 투기가 아닌 혁신에 있다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최고경영자는 지난달 4일 신년사에서 탈중앙화 분산처리 기술 개발을 언급하며 가상화폐 개발 가능성을 시사했다. 모바일 메신저 텔레그램은 차세대 가상화폐 개발을 선언하고 사세를 키우고 있다. 고집스러운 아날로그 정책으로 한때 존폐의 기로에 놓였던 코닥은 블록체인으로 구현될 세상에서 재기를 꿈꾼다.

미국 시카고 선물거래소·옵션거래소는 지난해 12월 비트코인을 선물 상장했다. 일본 정부는 이보다 앞서 같은 해 4월 자금결제법을 개정해 가상화폐를 결제수단으로 인정했다. 이 모든 상황은 블록체인과 가상화폐가 앞으로 파생할 생활환경과 금융질서의 변화를 대비한 ‘투자’로 볼 수 있다.

한국은 어느 나라보다 블록체인산업을 육성할 잠재력을 가진 IT 강국이다. 2000년을 전후해 전국을 인터넷망으로 연결한 ‘브로드밴드(광대역통신망) 혁명’은 세계 최고 수준의 IT 인프라를 구축하고 외환위기를 극복하는 동력이 됐다. 2020년을 앞두고 블록체인을 앞세워 찾아온 ‘IT 금융 혁명’은 한국에 또 한 번 도약할 기회를 제안하고 있다.

하지만 블록체인 연구와 혁신보다 먼저 시작된 것은 투기였다. 취업난·전세난·육아난에 시달리는 2030세대 월급쟁이들은 블록체인 기술의 잠재력에 앞서 가상화폐 투자로 횡재한 사연에 주목했고 그 혼란을 틈타 ‘큰손’이 파고들었다. 가상화폐 시장은 지난해 10월부터 석 달 동안 상승하는 듯했지만 지난달 폭락장으로 돌변했다. 그 낙폭만큼 큰 좌절감이 사회를 휘감았다. 급기야 가상화폐 투자로 거액의 수익을 올렸다가 폭락장에서 투자금 대부분을 잃은 대학생이 숨진 채 발견됐다.

정부 규제나 부정적 여론에 작은 목소리의 반론조차 내지 못했던 블록체인 업계에서도 투기 과열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글로스퍼 김 대표는 가상화폐 투기에 고정했던 시선을 블록체인 연구·개발로 돌리면 ‘흙수저 세대의 마지막 사다리’보다 훨씬 큰 디딤돌이 보일 거라고 했다. 그는 “블록체인이 올해 자리를 잡을 거라는 관측이 많다. 특히 저작권, 유통, 헬스케어 분야로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며 “블록체인은 IT 기술이 존재하는 어떤 분야에도 적용할 수 있다. 우리에게 도전의 기회가 열려 있다”고 말했다.

글·사진=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 그래픽=공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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