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홍 칼럼] 참사 피해자들이 주시하고 있다 기사의 사진
소중한 생명 앗아가는 참사 너무 자주 일어나
단기적·가시적 조치로는 재난 막을 수 없어

현 정부 출범 이후 ‘안전한 대한민국’ 건설 작업
소홀히 한 건 아닌지 자성해야


무고한 시민들이 너무 쉽게 죽어나가고 있다. 대형 화재가 나서, 배끼리 충돌해서, 타워크레인이 무너져서, 공장에서 작업하다 가스에 질식해서, 대형병원의 잘못된 조치로 인해서…. 우리 사회에 안전한 곳이 과연 있는가, 이러다 사고공화국이라는 오명을 쓰는 건 아닌가라는 생각마저 드는 요즘이다.

최근엔 화재 공포가 커졌다. 제천에 이어 밀양에서의 대형화재 사고로 한꺼번에 수십명이 목숨을 잃은 탓이다. 많은 이들이 이용하는 중소규모 시설이 화재에 취약한 것으로 드러났으니 불안하고 뒤숭숭한 건 당연지사다. 화재가 진압된 뒤 전해지는 희생자들을 둘러싼 가슴 찡한 사연들은 참담함에 안타까움을 더해준다. 그런 와중에 3일 아침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 본관에서 불이 나 입원환자 등 400여명이 대피하는 일이 벌어졌다. 소방안전 사각지대에 있다시피 한 지방도시의 중소병원에 이어 서울 한복판에 위치한 내로라하는 초대형 병원에서 불이 난 것이다. 이러니 굳이 하인리히 법칙을 들먹이지 않아도, 머지않아 또 다른 대형 참사가 터질 것 같다는 걱정과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내는 이들이 점점 늘어날 수밖에 없는 것 아니겠나.

반복되는 참사 원인들은 거의 드러나 있다. 가연성 외장재, 피난통로 미확보, 불법 증축, 부실한 소방시설 관리, 수박겉핥기식 안전점검, 시정명령 무시, 소방도로를 점거한 불법주차 등등. 제천과 밀양의 사례도 이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엄청난 인명을 앗아간 참사 때마다 온갖 대책을 내놓느라 법석을 떨었지만, 지금까지 달라진 게 없다는 얘기다.

우리나라는 평창올림픽 개최로 국제스포츠 그랜드슬램(하계올림픽·동계올림픽·월드컵축구대회·세계육상선수권대회)을 달성한 여섯 번째 국가가 됐고, 내년이면 30-50클럽(국민소득 3만 달러·인구 5000만명 이상)에 가입하는 일곱 번째 국가가 될 전망이다. 자랑스러운 기록이다. 하지만 잇단 안전사고는 이를 무색하게 만든다. 남부끄럽고 창피할 정도다.

정부가 5일부터 내달 30일까지 지자체·민간전문가들과 함께 국가안전대진단에 나서기로 한 목적은 대형 참사를 예방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정부는 세월호 참사 이듬해인 2015년부터 매년 실시돼온 국가안전대진단과는 달리 올해는 진단실명제와 지자체별 안전도 평가제 도입 등 새로운 방식으로 실시될 것이라며 의욕을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우려스러운 점이 있다. 우선 54일간 전국의 29만여개 시설물에 대해 안전진단을 실시하는 게 과연 가능한지 의문이다. 하루에 5400여개를 점검해야 하는데, 대충 살펴보면 가능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점검의 실효성을 담보하기는 역부족일 것이다. 재난의 근본요인들을 제거하는 데에는 오랜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 여론을 의식한 단기적·가시적 조치로는 반복되는 참사를 결코 막을 수 없다. 지금부터라도 조급증을 버리고, 안전진단의 실효성을 높이는 방안을 다시 강구하길 바란다.

국민 안전문제에 대한 정부의 안이한 자세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문재인 대통령은 얼마 전, “세월호 참사로 안전한 나라가 가장 중요한 가치로 대두된 이후에도 우리는 안전을 강화하는 데 마음을 모으지 못했고, 속도를 내지 못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 책임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정부·지자체·정치권 모두 공동의 책임을 통감하면서 지금부터라도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드는 데 마음을 모아 달라”고 말했다. 얼핏 들으면 틀린 게 없는 것 같다. 그러나 대통령으로서 막중한 책임감을 느낀다는 말이 빠졌다. 참사 발생이 대통령 책임이라는 얘기가 아니다. 집권 이후 9개월여 동안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일에 소홀히 한 게 아닌가 되돌아봐야 한다는 것이다. 많은 시민들이 죽은 뒤에야 “안전불감증이나 적당주의는 청산해야 할 적폐”라며 정부의 총력전을 주문한 것도 때늦은 감이 있다. ‘모두의 책임’이라는 대통령 발언은 적절치 않았다. 책임지는 모습은 ‘안전한 나라’를 약속한 정부부터 보여주는 게 순리다. 그리고 포항 지진이나 제천 참사 직후에 전국적인 안전진단에 착수하지 않은 점 역시 이해가 안 된다.

포항 얘기가 나왔으니 첨언하자면, 지난해 11월 15일 지진 피해로 아직도 임시구호소에서 천막생활을 하고 있는 포항시민 300여명이 느닷없는 임시구호소 폐쇄 방침을 전해 듣고 한숨과 울분을 토하고 있다고 한다. 지난해 12월 3일 일어난 영흥도 낚싯배 충돌사고 희생자 유가족들은 국가에 분노하며 소송을 준비 중이라고 한다. 정부도 이를 알고 있는지 모르겠다.

김진홍 논설실장 jh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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