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서윤경] “하이 톰” “하이 명희” 기사의 사진
“그릇된 지식의 원인은 대상을 파악하는 잘못된 원근법에 있다.” 레프 톨스토이의 ‘인생론’ 속 이 문장은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 단순하게 보이니 가장 알기 쉬운 것으로 생각할 수 있음을 얘기한다. 가까이 다가가서 보면 훨씬 복잡하고 어려울 수 있는데 말이다. ‘안나 카레니나’ ‘부활’ 등을 쓴 세계적 문호의 인문학 서적이라는 점에 매력을 느껴 읽었던 이 책에서 유독 눈길을 끄는 문장이었다. 그런데 지난 1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2차 개정협상 취재를 마치고 뜬금없이 이 문장이 떠올랐다. 톨스토이가 말한 원근법의 오류가 단순히 거리에서만 나오느냐는 것이었다.

“‘하이 톰, 하이 토머스’라고 인사해요. 놀랍지 않아요?”

유명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실장이 들려준 통상 협상장의 뒷이야기다. 60세를 훌쩍 넘은 캐나다에서 온 톰과 호주에서 온 토머스는 각 나라를 대표하는 고위 관료다. 30대 때부터 스태프로 참여하며 오랜 세월 만나니 친구처럼 됐다는 게 유 실장의 설명이다.

최근 통상정책국장에서 통상교섭실장으로 승진한 유 실장은 산업부의 시초인 1948년 상공부가 출범한 이후 70년 만에 ‘금녀의 벽’을 허문 첫 여성 1급 고위공무원이다. 그런 그는 기자들을 만날 때마다 한국의 취약한 통상 인력과 네트워크를 자신의 경험을 담아 말했다. 지난달 5일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린 한·미 FTA 1차 개정협상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미국 측은 서비스, 지식재산권 등 분야별 통상 담당 국장들이었는데 한국 측 국장급은 유 실장뿐이었다.

무역 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는 FTA나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등 다자·양자간 통상 협상을 진행해야 한다. 그럼에도 전문 인력을 키우는 데 너무 소홀하다는 것이다. 전문성이 떨어지다 보니 어이없는 협상 환경을 만들기도 한다. 자국 이익을 위해 각자 유리한 싸움을 진행해야 하는데 협상 테이블에서 한국의 행동은 아마추어 같다는 것이다. 한·미 FTA 개정협상이 단적인 예다. 협상단의 직책은 상대보다 낮고 양측 모두 영어로 소통한다. 영어는 미국의 자국어다. 말도 안 되는 상황이 전개되는데 누구 하나 수정할 생각이 없다. 잘못된 원근법이 떠오른 이유다. ‘굳이 할 필요 있느냐’는 식의 의도적 거리 두기로 대상을 단순화한 게 아니냐는 것이다.

‘하이 명희’처럼 언젠가 통상 협상이 열리는 현장에서 우리도 이름을 부르며 인사할 수 있을까.

글=서윤경 차장, 삽화=전진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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