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지금도 계속되는 ‘현대판 노예’… 경북 농가서 구출 기사의 사진
사진=국민일보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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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년간 임금 한푼 못 받은 60대

면사무소 학대의심 신고로 구출
컨테이너 생활하며 농장일 혹사
“농장주가 잘해줬다”… 수사 중단
말투 어눌… 지적장애 2급 수준
전문가 “오랜 기간 학대 당하면
익숙해져 피해 사실 인지 어려워”


최근 경북의 한 농가에서 20년 넘게 일하고도 임금을 한푼도 받지 못한 60대 남성이 발견돼 임시 구조조치된 것으로 4일 확인됐다. 남성은 간이 컨테이너와 창고에서 자고 지내는 등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며 노동력을 착취당해 왔지만 구조 당시까지 불법과 인권침해가 있다는 사실 자체를 인지하지 못했다. 방씨는 지적장애 판정을 받을 기회조차 없었다. ‘염전 노예’ 사건이 충격을 불러온 지 4년이 지났지만 현대판 노예 사건은 우리 주위에서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피해자 방성식(가명·62)씨는 지난달 중순 서울의 한 쉼터로 거처를 옮겼다. 방씨는 경북의 한 면사무소 관계자가 장애인 단체에 학대의심 신고를 하면서 발견됐다.

쉼터 관계자는 “1995년부터 농가에서 일했지만 근로 대가를 전혀 받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며 “발견 당시 외투와 바지가 무척 더러웠고, 사는 곳 주위에 쓰레기가 널브러져 있는 등 환경도 좋지 못했던 것으로 안다”고 했다. 그가 묵은 곳에는 난방시설이 없어 한겨울에도 전기장판을 켜고 낡은 이불에 의지해 지낸 것으로 알려졌다.

쉼터와 관계자의 말을 종합하면 방씨는 20년 이상 아침부터 저녁까지 농가에서 축사 관리와 농사일을 하며 지냈다. 모내기철에는 새벽부터 일해야 했고, 오후 9시가 넘어서야 겨우 저녁밥을 먹을 수 있었다고 한다. 농장주 축사에서 염소를 먹이고 소똥을 치우는 일도 그의 업무였다. 그의 급료통장은 2013년도에 개설됐지만 그가 사용한 흔적을 찾기 어려웠고, 잔액도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23년을 일했지만 가진 돈이 하나도 없었던 것이다.

낯선 사람에 대한 경계심도 가득했다. 기자가 찾아가 인터뷰를 시도했지만 시선을 마주하지 못한 채 바닥만 바라보며 말을 얼버무렸다. ‘왜 이곳으로 왔느냐’고 묻자 “농사하다 왔다”고 답하는 등 어눌한 말투로 엉뚱한 말을 하기 일쑤였다.

‘농장주에게서 임금을 받았느냐’는 질문에 “형님과 형수님이 정말 잘해줬다. 밥도 같이 먹고 잘 챙겨줬다”고 했다. 쉼터 관계자는 “노동력을 착취당하고 살았지만 20년 넘게 그곳에서 지내며 세뇌당한 것 같다”고 했다. 방씨처럼 노예 생활을 하다 구조돼 쉼터에 머물고 있는 다른 남성은 “아직 새로운 환경에 적응이 덜 된 것 같다”고 했다.

구조 단체는 경찰에도 신고했지만 방씨가 “형님과 형수님이 잘해줬다. 학대받지 않았다”고 진술해 수사가 진행되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쉼터 관계자는 “방씨는 지적장애 2급 판정은 받을 것으로 보인다”며 “현재 장애등록을 신청한 상황”이라고 했다.

학대피해장애인지원센터 김강원 팀장은 “노예사건 피해자들은 오랜 기간 학대당했어도 학대를 받은 것인지 인지하기 어렵거나 오랜 학대에 익숙해져 피해 사실을 말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며 “수사기관이 피해자가 장애인임을 감안하지 않고 통상적 조치만 취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허경구 기자 nine@kmib.co.kr

그래픽=공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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