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원준 칼럼] 공정에 민감한 한국 기사의 사진
사회 구석구석에 문제가 생길 때마다 들이대는 공정이라는 잣대
모두가 감시자로 나서는 세상 만들지 않으려면 불공정 관행 고치는 수밖에


#. 2010년은 ‘공정(公正) 신드롬’이 일었던 해다.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는 5월 출간 이후 베스트셀러 목록을 떠나지 않았다. 연말까지 65만부가 팔렸다. 8월에는 이명박 대통령이 광복절 경축사에서 ‘공정한 사회’를 7번이나 언급했다. “이 시점에 우리는 공정한 사회라는 가치를 주목해야 합니다. 출발과 과정에서 공평한 기회를 주고….” 이 연설로 공정은 이명박정부의 국정기조가 됐지만 그 신드롬은 몇 주 시차를 두고 나타났다.

9월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의 딸이 외교부 5급 특채에 합격했다는 게 밝혀졌다. 1명을 뽑는 데 장관 딸이 뽑혔다. 사람들은 “이게 공정한 사회냐”고 아우성을 쳤다. 같은 달 대한석유협회장은 기자회견을 열어 이렇게 말했다. “클린디젤은 천연가스 못지않게 친환경적인데 서울시가 디젤버스를 천연가스로 교체하라 강요한다. 이게 공정한가.” 사회 구석구석에서 문제가 생길 때마다 공정이란 잣대를 들이대기 시작했다. 공정은 그것을 외친 정부가 공정하지 못한 모습을 몸소 보여주면서 이렇게 신드롬이 됐다.

윤평중 한신대 교수는 당시 청와대에서 공정한 사회를 주제로 강연했다. 말미에 질문이 나왔다. “공정한 사회로 가려면 시민의식이 높아져야 하지 않을까요?” 윤 교수는 종합병원에서 겪은 일을 꺼냈다. “접수 번호표 기계가 고장이 났습니다. 직원이 마이크로 이름을 불렀습니다. 혼란이 벌어졌어요. 소리가 잘 안 들려서 이름 부를 때마다 사람들이 접수대로 몰려갔습니다. 평소 1시간씩 말없이 기다리던 시민의식이 갑자기 낮아진 걸까요? 번호표는 공정함을 보장해주는 제도입니다. 공정한 시스템이 갖춰지면 사람들은 1시간도 기다리지만 그게 없을 땐 1분도 못 견딥니다.” 공정은 시민의식이 아니라 ‘게임의 룰’로 확보된다는 얘기였다.

#. 이듬해 3월 ‘나는 가수다’란 TV 프로그램이 열풍을 일으켰다. 아주 독한 프로그램이었다. 꼴찌는 무대를 떠나야 했다. 국민가수 김건모가 첫 탈락자로 호명된 순간 녹화장은 술렁였다. 뛰쳐나간 이도 있었다. PD는 사태를 수습하려 김건모에게 재도전 기회를 줬다.

탈락자가 무대에 남게 되자 비난 여론이 들끓었다. “원칙을 깼다” “반칙이다” “공정하지 않다”…. ‘나가수’를 만든 건 예능 PD였다. 재미있자는 오락에서도, 아무리 김건모라도 게임의 룰을 흔드는 건 용납되지 않았다. MBC는 방송을 중단하고 PD를 교체해야 했다. 공정은 한국인이 세상을 판단하는 중요한 기준이 돼 있었다.

그 무렵 카이스트 학생들이 잇따라 자살했다. 아프니까 청춘이라기엔 충격적이었다. 징벌적 등록금제 등 경쟁 유도 정책이 도마에 올랐다. 서울대 김난도 교수는 이렇게 진단했다. “386세대는 팔자가 좋았어요. 학생들은 군부독재에 맞서 싸우는 동지였죠. 고속성장에 일자리가 남아 경쟁에 몰릴 일도 많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경제가 많은 기회를 주지 못하고 함께 싸울 거악도 사라졌습니다. 이젠 내가 살아남기 위해 친구와 경쟁해야 합니다. 낙오하면 ‘내 능력이 부족해서’가 돼버렸습니다.”

김건모의 재도전에 ‘공정하지 않다’는 비난이 쏟아진 배경을 그는 이런 경쟁에서 찾았다. “치열한 경쟁 속에 사는 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건 게임의 룰입니다. 경쟁의 원칙이 흔들리는 것, 요즘 젊은 세대에겐 있을 수 없는 일인 거죠.”

#. 세월이 흘러 정권이 두 번 바뀐 2018년. 평창올림픽을 앞두고 남북 단일팀 논란이 일었다. 한반도 평화를 위해 그림을 만들려는 정부와 남한 선수의 피해를 떠올린 여론이 충돌했다. ‘국가가 먼저냐 개인이 먼저냐’부터 ‘통일에 대한 인식 변화’까지 여러 해석이 나왔지만, 나는 이 논란이 극도로 예민해진 한국사회의 ‘공정 감수성’에서 비롯됐다고 본다.

단일팀에 합류하는 북한 선수를 ‘낙하산’처럼 여기는 시선이 단적인 예다. 2030세대의 젊은 시인은 어느 칼럼에서 “단일팀 취지를 반대한 게 아니라, 개인을 희생하는 데 분노한 게 아니라, 그 과정의 불합리와 불공정에 공감하지 못한 것”이라고 했다. 한반도 평화라는 거대한 명분도 게임의 룰을 흔들어선 안 되는 세상. 그렇게 된 까닭은 거의 10년 전 공정 신드롬을 일으켰던 ‘장관 딸 특채’ 같은 일이 여전히 벌어지는 상황에 있다.

광주은행에선 임원인 아빠가 딸을 면접해 채용했다. 공공기관과 금융권을 조사하니 기상천외한 채용비리가 무더기로 적발됐고, 교수들은 논문에 자녀 이름을 슬쩍 끼워 넣었다. 공정은 예민한 눈으로 지켜내야 할 가치다. 그것이 ‘공정에 과민한 사회’로 변질되지 않으려면, 모두가 룰 감시자로 나서는 경직된 세상을 만들지 않으려면 구석구석 불공정 관행을 찾아내 고치는 수밖에 없다.

태원준 온라인뉴스부장 wjta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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