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전정희] 평창올림픽, 아들의 평화 기사의 사진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 출신 이우현 선생은 ‘메밀꽃 필 무렵’의 작가 이효석의 장남이다. 1937년생으로 지금은 이효석문학재단 이사를 맡고 있다. 최근 평창 동계올림픽 기념 평화기원 문학포럼에 참석하기도 했다. 그는 1959년 국비장학생에 선발되어 미국 위스콘신대에서 경영학을 공부했다. 그리고 미국 굴지기업 CEO까지 지냈다.

그는 어린시절 지금의 평창올림픽스타디움 정차역인 KTX진부역 인근 면소재지에 살았다. 평양 숭실학교 교수였던 아버지를 따라 그곳에 살기도 했으나 1940년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고향 평창으로 내려와 조부모 손에 컸다. 평창은 늘 눈이 내렸다. 사는 것은 다 그만그만했다. 소년은 광복과 6·25전쟁이라는 짧은 기간에 아버지와 할아버지마저 잃었다. 고향 평창은 눈꽃과 메밀꽃의 순백이었으나 그는 외롭고 가난했다. 조실부모한 열세 살 소년가장은 금의환향을 다짐하고 경기공립중(경기제일고보)이 있는 서울로 향했다.

한데 경기중 입학하던 해 전쟁이 발발했다. 수원을 거쳐 호남 방향으로 피난길에 나섰다. 피난 화물기차에 사람들이 서로 타려고 아비규환이었다. 기차 지붕에까지 피난민이 달라붙어 있는 형국이었다. 기차는 수원 전주 남원을 거쳐 여수로 향했다. 그들은 군인들이 주는 주먹밥을 먹으며 생존했다.

기차는 노령산맥을 지나 지리산 갈래 터널들을 지날 때마다 힘이 달려 뒤로 밀리곤 했다. 그때마다 사람들이 우수수 떨어져 죽거나 다쳤다. 주검은 일상이었다. 소년은 “힘없고 가난한 민족 앞에 놓인 건 죽음뿐”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여수를 거쳐 부산으로 피난했고 그곳 임시교사에서 공부했다. 청년 이우현은 여의도비행장서 대한민국 첫 여객기 KNA프로펠러기를 타고 미국 유학을 떠났다. 승객 60명은 손에 엑스레이 필름을 들고서 시애틀공항에서 입국수속을 밟아야 했다. 선진국 일본인들은 맨손에 무사통과였다. 그는 가난한 나라 국비유학 청년으로 평생 국가와 고향에 대한 부채감을 안고 살았다. 이효석은 일제강점기 식민지 지식인으로 흔들리며 어떻게든 살아냈다. 그 아들 우현은 가난한 국가 지식인으로 전쟁을 겪으며 금의환향을 꿈꿨다.

우리는 서울 평화시장 봉제공으로 갔든 미국 유학을 갔든 금의환향을 꿈꾸며 살았다. ‘그 고향’ 평창과 대한민국에서 이틀 후면 평화올림픽이 열린다. 이제 성공적 지구촌 축제로 이끄는 데 마음을 모으자.

전정희 논설위원 겸 선임기자

삽화=이영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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