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봅시다] 국가라는 이름으로… 평창 곳곳서 ‘묵살당한 개인’ 기사의 사진
토마스 바흐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왼쪽 털모자 쓴 사람)과 장웅 북한 IOC 위원(바흐 위원장 오른쪽)이 5일 강원도 평창의 동계올림픽 선수촌에서 형형색색의 스프레이로 칠해진 휴전벽 앞에서 대화하고 있다(위 사진). 평창올림픽 출전이 좌절된 전 스키 국가대표들이 평창 올림픽플라자 인근에서 대한스키협회를 규탄하는 옥외 집회를 하는 모습. 평창=윤성호 김지훈 기자
아직도 어른거리는 전체주의 망령

선수촌에서 공개된 ‘휴전벽’
제막 후 그림 등 넣기로 했지만
조직위가 멋대로 스프레이 뿌리고
작가와 상의 않고 이름 바꿔

사전 설득 없이 단일팀 구성도

스키협회·빙상경기연맹은
행정편의적 업무로 반발 불러


국가와 조직의 이익을 개인의 이익보다 우선시하던 시절이 있었다. 집단을 위해 개인은 희생해도 된다는 발상이 민주화 이전 대한민국을 지배했다. 그런데 30년 만의 올림픽을 준비하는 2018년 현재에도 이 같은 국가주의의 그림자가 여전히 어른거린다.

평창 동계올림픽의 성공적인 개최를 기원하며 강원도 평창 선수촌에 만들어진 예술작품을 올림픽조직위원회가 작가와 상의하지 않고 훼손한 일이 발생했다. 오로지 제막 행사의 원활한 진행을 위해서다.

디자이너 이제석씨는 5일 평창선수촌에서 공개된 자신의 작품을 보고 깜짝 놀랐다. 휴전벽으로 불리는 이씨 작품에는 오륜과 성화, 마스코트 수호랑 등 평창올림픽을 상징하는 그림들이 형형색색의 스프레이로 그려져 있었다. 원래는 깨끗한 휴전벽을 먼저 공개한 뒤 제막 행사 이후 각국 선수단 및 관계자들의 스프레이 칠을 허용하기로 조직위와 합의했었다.

조직위는 제막 행사장의 날씨를 감안해 미리 스프레이를 뿌렸다고 설명했다. 행사장에 바람이 강하게 불어 당초 계획대로 현장에서 스프레이를 뿌리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판단이었다. 그러면서 “이씨와 상의하지 않고 행사 순서를 바꾼 점은 유감”이라고 했다.

휴전벽의 이름도 이씨는 ‘벽에서 다리로(Barriers to Bridges)’ 또는 ‘벽이 아닌 다리 만들기(Build Bridges Not Walls)’를 제안했다. 하지만 조직위는 시공 하루 전 일방적으로 ‘다리 만들기(Buiding Bridges)’를 휴전벽의 명칭으로 결정했다.

이뿐만 아니라 평창올림픽 준비 기간 동안 ‘묵살당한 개인’은 줄곧 논란이 됐다. 앞서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은 정작 우리 대표팀 감독과 선수들의 의견은 전혀 반영되지 않은 채 추진됐다. 정부는 경색된 남북관계 개선과 평화적인 올림픽 개최를 위한 단일팀 구성이라고 강조했다. “비인기 종목의 설움을 씻을 기회”라는 발언도 대통령과 국무총리 입에서 서슴지 않고 나왔다. 결국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청와대 장차관 워크숍에서 남북 단일팀 결성과 관련 사전 설득 노력이 부족했다고 유감을 표명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도 남북 단일팀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여론이 훨씬 많았다.

선수들을 대변해야 할 대한스키협회와 대한빙상경기연맹은 행정편의적 업무처리로 올림픽 출전을 준비하던 선수들 가슴에 피멍을 들게 했다. 개최국 출전권 획득 여부도 확인하지 않고 일처리를 하다가 올림픽 선수단 결단식에 참여한 선수가 탈락하기도 했다. 자력 출전권을 따낸 선수의 의사도 묻지 않고 ‘부상’을 이유로 출전권을 박탈한 사례도 나왔다.

아울러 올림픽을 돕겠다고 나선 자원봉사자들에 대해선 부실한 교통 지원과 숙소 등 열악한 처우 문제가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급기야 일부 자원봉사자들은 처우 개선을 요구하며 지난 3일 올림픽 모의 개회식을 치르기에 앞서 불참 보이콧을 선언했다가 막판에 취소하는 해프닝도 발생했다. 평창올림픽 조직위원회는 6일 뒤늦게 자원봉사자의 숙식 및 교통 이동에 대해 개선책을 약속했지만 잘 지켜질지는 미지수다.

유성열 기자 nukuva@kmib.co.kr

사진=윤성호 김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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