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정승훈] 불편 없이 안전 없다 기사의 사진
2003년 2월 18일 오후. 서울 강남경찰서에서 출발한 취재차량이 대구 시내 한복판에 멈춰 섰을 때의 느낌은 생경했다. 왕복 10차로는 되어 보였던 널찍한 도로는 텅 비어 있었다. 차량 통제 탓인지 주변엔 취재차량 몇 대만 있었고 멀찍이 떨어진 현장 부근엔 소방차와 구급차 여러 대가 보였다. 80, 90년대 가두시위가 벌어졌던 거리처럼 햇빛은 연기 사이로 희미하게 비쳤다.

차에서 내려 연기가 솟구치는 곳으로 다가가는 동안은 영화나 TV 속 주인공이 충격을 받은 장면처럼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러다 문득, 지하철역 이름이 눈에 들어올 때쯤 갑자기 모든 소리가 터져 나왔다. 사이렌 소리, 경적 소리, 다급한 외침, 고함 소리, 악다구니, 울부짖는 소리…. 그렇게 서너 시간을 아스팔트 도로 위를 뛰어다녔다.

진화와 구조작업이 끝난 뒤 주변이 어둑어둑해졌을 때 담당 검사가 현장 확인을 위해 도착했다. 몇몇 기자들도 검사의 뒤를 따라 중앙로역으로 들어갔다. 안으로 내려가는 길은 컴컴했다. 군데군데 비상등이 켜져 있었지만 연기가 자욱해 한참을 두리번거려야 했다. 매캐한 내음에 이곳저곳에서 콜록거리는 기침 소리가 났다. 지하철 승강장으로 내려가자 뼈대만 남은 객차 몇 량이 희뿌연 소화액과 물을 흠뻑 뒤집어쓴 채 덩그러니 서 있었다. 객차 주변에는 뜨거운 화기가 여전했다. 그러나 그 안에 사람의 온기는 없었다. 이날 총 192명이 이곳에서 숨졌다. ‘대구 지하철 참사’ 현장이었다.

15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열흘 후엔 대구 지하철 참사 15주기 추모식이 열린다. 이 사고 이후로 지하철 내장재가 바뀌었고 지하철역에는 방독면 등이 비치되는 등 많은 변화가 생겼다. 이후 화재 사고에 대비하기 위한 사회 전반의 정책과 제도도 개선됐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역부족이었던 것 같다.

지난해 말 제천 노블 휘트니스 스파 화재 참사와 지난달 밀양 세종병원 화재 참사를 겪다보니 현장에서 지켜지고 집행되지 않으면 정책과 제도는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하다는 점을 절실히 깨달았다. 제천 참사도, 밀양 참사도 업주와 당국의 무사안일이 큰 사고로 이어졌다. 제도와 규정을 제대로 지켰더라면 충분히 막거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

미국에 가본 경험이 있는 이들은 주변에서 누군가 미국을 방문한다고 하면 “운전하게 되면 ‘STOP’ 사인이 있는 곳에선 무조건 차를 세워야 한다”고 아는 체를 한다. 한국에서 운전자들은 사람이 지나가고 있어도 아랑곳없이 횡단보도 위를 달리는데 왜 미국에서는 사람이 없을 때도 차를 세우는 것일까?

미국이 한국보다 나은 점은 운전자들의 의식 수준이 아니라 만들어진 제도나 법을 실행하고 강제하는 능력이다. 미국에서 ‘STOP’ 사인을 무시했다가는 수십만원의 벌금과 벌점을 감수해야 한다. 한국에서도 미국처럼 횡단보도에서 멈추지 않고 가는 차량에 대해 예외 없이 수십만원의 벌금과 벌점을 부과한다면 1∼2년 내에 횡단보도 보행자 사고는 획기적으로 줄어들 것이다. 세계 각국에서 “한국에서 운전하게 될 때는 무조건 횡단보도에서 우선멈춤을 해야 돼”라고 훈수 두는 이들을 보게 될지도 모른다.

우리 사회의 문제는 제도나 법을 만든 뒤 이를 제대로 실행하지 못하는 것이다. 시행했다가 ‘규제 완화’ 차원에서 거둬들인 규정이 얼마나 많은지, 법은 만들었으되 유예조항을 두고 시행 여부를 눈치 보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정치인들과 정부의 핑계는 결국 국민이다. 국민을 불편하게 하고 국민에게 불이익이 돌아간다는 이유를 댄다. 다소간의 불편, 그리고 추가적인 비용 지불을 감내하더라도 보다 안전한 사회를 만들자는 목소리에 우리는 기꺼이 동의할 수 있을까. ‘불편을 감내하겠다’거나 ‘비용을 더 내겠다’는 동의 없이 안전에 대한 논의는 요원하다. 불편과 추가 부담 없는 안전은 허상일 뿐이다.

정승훈 사회2부장 shj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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