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암 3기… 하루 10시간 작업하는 ‘강골’ 정재규 기사의 사진
“허허, 병 덕을 보는 건가 봅니다.”

수화기 너머 목소리가 낮고 부드러웠다. 2015년 직장암 3기 진단을 받고, 간암으로 번지며 세 번의 수술을 받았다. 지금도 2주에 한 번 항암치료를 받으며 투병 중인 재불 정재규(69·사진) 작가가 서울 종로구 가나아트센터에서 개인전 ‘조형 사진-일어서는 빛’을 갖고 있다. 지난달 31일 기자간담회에 이어 7일 추가로 전화 인터뷰를 했다.

간담회에서 그는 눌러쓴 털모자를 벗으며 농을 던졌다. “추운 날씨 탓도 있지만 보시다시피 항암치료 중이라…. 어떤가요. 다시 까까머리 중학생이 된 기분이에요.”

의사로부터 직장암 진단을 받고 처음엔 믿기지 않았다. 평소 감기 한번 걸리지 않아 건강 체질이라 자부하던 그였다. “가만히 돌이켜보니 피로가 누적됐던 거예요. 체질상 아침 일찍 일어나요. 제 작업 기반인 ‘올짜기’는 또 종일 서서 하는 일이에요. 보통 하루 12∼14시간씩 작업했거든요. 피로가 누적될 만큼 누적돼 건강을 해쳤나 봐요. 일이 안 풀리면 담배도 무진 피웠지요.”

그의 생활은 작품 속 패턴만큼 규칙적이었다. 프랑스 파리의 집에서 아침에 눈뜨면 50분 거리의 아치 아틀리에로 출근한다. 집과 아틀리에가 전부이던 일상은 암 진단 후 집-아틀리에-병원의 트라이앵글이 됐다. 상황이 악화돼 2016년에는 40년 화업 가운데 처음으로 한 작품도 하지 못하는 기록을 세웠다. 다행히 호전되면서 지난해 3월부터 다시 작업을 할 수 있게 됐다. 버릇은 여전해 투병 중인데도 10시간씩 작업한다고 말했다.

서울대 미대를 졸업한 정 작가는 1977년 파리 비엔날레에 초청받은 걸 계기로 78년 파리에 유학을 가 현지에서 활동하고 있다. 회화를 전공했지만 그의 작업은 사진에 기반한다. 하지만 사진을 새로 찍는 게 아니라 기성 사진을 활용한다. 풍경 인물 등 선택한 사진을 세로로 자르고, 포장지는 가로로 또 자른 뒤, 포장지를 사진 사이에 직물 짜듯 끼워 넣는다. 일명 올짜기 기법이다. 그렇게 해서 사진 속 이미지는 살아 있으면서 새롭게 기하학적인 패턴이 얹힌다. 그에게 사진은 재현의 수단이 아니라 지각적 즐거움을 주는 조형 수단인 것이다. 그는 이런 작업을 남성 변기를 전시장에 가져다놓고 직접 제작한 것처럼 ‘샘’이라고 이름 붙인 프랑스 출신 미국 작가 마르셀 뒤샹의 ‘발견의 미술’에 비유한다.

서울 전시가 잡히면서 그는 신이 났다. 의욕은 넘쳤지만 체력이 예전처럼 받쳐주지 못해 소품을 주로 했다. 뒤샹, 폴 세잔, 만 레이 등 미술사의 거장을 소재로 40여점이나 냈다. 이번 전시를 위해 지난달 26일부터 항암치료 휴가를 냈다는 그는 오는 11일 돌아가 치료에 들어간다.

올해가 프랑스 생활 40주년이다. 고국에서의 개인전은 92년 파리 유학파들의 모임인 소나무회를 이끌며 맏형 노릇을 한 재불 권순철 작가의 주선이 큰 힘이 됐다고 한다. 3월 4일까지.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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