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법, 정부 책임 폭넓게 인정
117명에 300만∼700만원씩
승소 판결에 방청석 눈시울

정부가 주한미군 기지촌 성매매를 조장하고 방조했다는 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기지촌 성매매에 대한 정부의 책임을 적극적으로 인정한 첫 사례다. 서울고법 민사22부(부장판사 이범균)는 8일 이모씨 등 117명이 정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정부는 기지촌 내 성매매를 방치 또는 묵인하거나 적극적으로 조장하고 정당화했다”고 판단했다. 판결이 확정되면 이씨 등은 각각 300만∼700만원의 위자료를 받는다.

1957년부터 2000년대 초까지 미군기지 인근에서 성매매를 했던 이씨 등은 2014년 6월 “정부가 미군 기지촌 성매매를 조장했다”며 소송을 냈다. 2017년 1월 1심 재판부는 국가의 배상책임을 일부 인정했다. 이때 처음으로 이들이 ‘미군 위안부’로 인정됐다.

그러나 1심은 “정부는 지역환경 개선, 성병 예방 등 공익을 위해 기지촌 성매매를 관리했다”고 봤다. 다만 전염병예방법 시행 전 성병에 감염된 여성들을 강제 격리 수용한 부분에 대해서만 배상책임을 인정했다. 법적 근거가 없어 위법하다는 이유에서다. 결국 57명에 대해서 각각 위자료 500만원의 배상 책임이 인정됐다.

항소심 재판부는 국가 책임을 더욱 넓게 봤다. 기지촌 정화운동, 주변 종합개발계획 등 당시 시행된 정책들이 성매매를 정당화하고 조장하기 위한 목적이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원고들의 성적 자기결정권과 존엄성을 외화 획득 및 군사동맹 강화 수단으로 삼았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성매매를 강요당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와 동일시할 수 없다”면서도 “자발적이었다 해도 정부가 이를 기회 삼아 국가적 목적을 달성한 이상 정신적 피해를 입었다고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또 지역자치조직에서 실시된 교육을 근거로 들며 “위안부들을 상대로 ‘다리를 꼬고 무릎을 세워 앉아라’ 등 포주가 지시할 만한 사항들을 가르쳤다”고 질타했다.

전염병예방법 시행 이후여도 의사의 진단 없이 수용소에 격리됐다면 위법하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단지 보건증에 성병 검진 기록이 없거나 미군이 감염 원인으로 지목했다는 이유로 격리된 여성들이 있었다”며 “이들을 상대로 쇼크사 등 부작용이 큰 페니실린을 무차별 투약한 행위는 객관적 정당성을 결여했다”고 판시했다.

재판부가 이처럼 판결하자 방청석에선 울음이 터져나왔다.

이가현 기자 hyu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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