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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산책] 아름다움을 빚어온 아흔의 손

[미술산책] 아름다움을 빚어온 아흔의 손 기사의 사진
박영숙, ‘비함(毘含)’. 2017. 디지털 C-프린트 . 한미사진미술관
얼굴을 알 수 없는 여성이 한쪽 무릎을 세우고 포즈를 취했다. 부드럽게 흘러내리는 붉은 재킷에 청바지를 곁들인 차림이 멋스럽다. 팔목의 대담한 팔찌, 공들인 손톱장식에서 범상치 않은 감각이 드러난다.

그런데 이런 사진 앵글, 참 낯설다. 왜 대상의 얼굴을 커팅하고, 손에 주목한 걸까?

일반인들은 잘 찍지 않는 구도로 인물을 촬영한 사람은 한국을 대표하는 여성주의 작가 박영숙(77)이다. 사진 속 여성은 올 들어 아흔이 된 김비함으로, 근자에도 개인전을 가졌고 삼청동 미술의 거리에도 자주 출몰(?)하는 아티스트다. 한때 고급 의상도 만들었다. 그가 젊은이들과 어울리는 모습에 반한 박영숙은 “선배님을 찍고 싶다”고 청했다. 그러나 완강한 거부에 부닥쳐 ‘손’을 찍었다. 아흔에 접어든 손은 주름이 깊게 패었지만 일평생 아름다움을 빚어온 손이요, 여전히 날 선 감각이 깃든 ‘현재진행형 손’이다.

1975년부터 이 땅의 여성들을 렌즈에 담아온 박영숙은 최근 들어 ‘노인여자’에 주목하고 있다. ‘여성 서사, 여성 사물’이라는 프로젝트를 시작하며 선배 여성들의 이야기를 채집 중이다. 카메라에 손사래 치는 이들을 달래가며 인터뷰하고, 사진을 찍었다. 그중 7명의 사진과 영상을 모아 한미사진미술관에서 ‘두고 왔을 리가 없다’라는 타이틀로 작품전을 열고 있다.

박영숙은 “모두 ‘젊음’을 숭배하느라 ‘나이 듦’은 감춰야 할 것이 됐다. 그러나 격변기를 감당해낸 그녀들의 삶은 찬란했다”고 밝혔다. 노년의 삶을 성찰한 박영숙의 작업은 우리에게 말한다. 마지막 죽음의 순간을 맞을 때까지 ‘나’답게, 값지게 살라고. 두고 온 것을 아쉬워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이영란 미술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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