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라동철] 열병식 기사의 사진
1970, 80년대 국군의 날에는 서울 여의도광장에서 대규모 열병식이 열렸다. 육·해·공군 장병들은 물론 사관학교 생도들까지 참가해 넓디넓은 광장의 아스팔트 위를 오와 열을 맞춰 행진했다. 어깨가 귀에 닿을 정도로 팔을 힘차게 흔들며 행진하다 사열대 앞에 다다르면 일제히 고개를 돌려 목청껏 ‘충성’을 외쳤다. 대통령과 국방장관을 비롯한 지체 높은 내빈들은 짐짓 근엄한 표정을 지으며 거수경례로 화답했다.

일사불란하게 진행된 열병식은 장관이었지만 동원된 장병들에겐 여간 고역이 아니었다. 성남비행장 등 서울 외곽에서 발이 부르트고 어깨가 뻐근해지고 얼굴이 새까맣게 타들어가도록 수도 없이 반복해서 연습해야 했다. 지금의 국제금융센터가 있던 자리에는 24인용 군용 텐트 수십 동이 들어섰다. 2∼3개월 전부터 전국 각지의 부대에서 차출된 병사들이 야영하며 행사에 필요한 병참을 지원했다. 국군의 날 열병식은 70년대 후반까지는 해마다 열렸으나 이후에는 3년 주기로, 90년대 후반부터는 5년 주기로 실시됐다. 장소도 계룡대나 세종대로로 바뀌었다.

열병식은 보기에는 그럴듯하지만 전투력 증강에는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다. 장병들이 혹사당하고 비용도 많이 들어가는 전시성·낭비성 행사다. 그런데도 자국 군대의 충성심을 확인하고 군사력을 대내외에 과시할 수 있는 기회로 여겨서인지 세계 각국에서 열병식이 끊이지 않는다. 특히 러시아, 중국, 북한 같은 전체주의 성향의 국가일수록 더 집착한다.

북한이 건군 70주년을 맞아 8일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병식을 치렀다. 병력 1만3000여명이 동원됐지만 김일성 105번째 생일인 지난해 4월 15일 행사에 비해서는 규모나 진행 시간이 대폭 축소됐다. 외신기자들을 초청하지 않았고 실황 생중계도 하지 않았다. 평창올림픽 개막 하루 전이어서 취소하거나 축소해야 한다는 국제사회의 여론에 부응한 듯한 모양새다. 그러나 미국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화성 14, 15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등장시켜 핵·미사일 전력화 강행 의지를 숨기지 않았다. 남북, 북·미 대화 등을 통해 한반도 평화의 해법을 찾지 못한다면 북한의 호전적인 대규모 열병식을 언제든 또 보게 될 것 같다.

라동철 논설위원

삽화=이영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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