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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선수 나란히 김연아에 ‘화합의 불’ 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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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피겨스케이팅 금메달리스트 김연아(오른쪽)가 9일 강원도 평창 올림픽스타디움에서 마지막 성화 봉송 주자로부터 성화를 넘겨받으면서 관중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마지막 봉송 주자는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 박종아(남측·가운데)와 정수현(북측)이다. 평창=김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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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화 점화 감동의 순간

金, 얼음덩이에 불 붙이자
거대한 기둥 휘감고 올라가
2018㎞ 달려온 불꽃 활활 타올라


하얀색 드레스에 흰색 스케이트화를 신은 ‘피겨 여왕’이 얼음판 위를 길게 선회했다. 아름다운 곡선을 그리던 그는 101일 동안 2018㎞를 달려온 성화를 넘겨받았다. 미니 아이스링크 옆 얼음덩이에 불을 붙이자 거대한 기둥이 솟아올랐다. 17일간 평창의 하늘을 수놓을 ‘모두를 빛나게 하는 불꽃’은 그렇게 성화대에 자리를 잡았다.

모두의 예상대로였다. 한국 동계스포츠 역사에 한 획을 그은 김연아(28)가 9일 대한민국을 대표해 2018 평창 동계올림픽 개회식에서 점화자로 나섰다. 평창올림픽의 성화는 김연아로 시작해 김연아로 끝났다. 그는 지난해 10월 24일 그리스 올림피아의 헤라 신전에서 채화된 성화를 받아 한국으로 들고 왔었다.

이날 개회식 하이라이트인 성화 점화는 지난해 11월 1일 인천공항에 도착한 성화가 대한민국 구석구석을 누빈 과정을 영상으로 돌아보며 시작됐다. 이어 ‘쇼트트랙의 전설’ 전이경 싱가포르 국가대표팀 감독이 성화를 들고 평창 올림픽스타디움에 들어서자 3만5000여명에 이르는 관람객은 술렁였다. 전 감독은 성화봉을 아시아인 최초로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박인비에게 건넸다. 박인비는 안정환 전 축구 국가대표 선수에게 성화를 전달했고, 안정환은 그를 기다리고 있는 두 사람을 향해 달렸다. 두 사람은 남북의 화합, 평화를 상징하는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 박종아(남측)와 정수현(북측)이었다. 개회식 이전에 성화 점화자가 남북 단일팀일 수 있다는 관측도 나왔었다. 남북 선수단이 11년 만에 한반도기를 앞세워 공동 입장했다는 상징성 때문이다. 성화봉을 나란히 맞잡은 둘은 성화대를 향해 계단을 뛰어올라가며 ‘평화 올림픽’의 메시지를 다시 세계에 알렸다.

불빛이 비춰진 성화대 앞 미니 아이스링크에는 김연아가 아름다운 자태로 서 있었다. 각국 선수단은 물론 개회식 참석자들은 열렬한 환호와 탄성을 쏟아냈다. 오랜만에 빙판 위에 오른 김연아는 현역 시절을 연상케 하는 우아한 모습을 선보였다. 이어 김연아의 손끝에서 번진 불꽃은 30개의 링을 타고 솟아올랐다. 불꽃이 달항아리 안에서 타오르자 평창올림픽의 개막을 알리는 축포가 터졌다. 1988년 서울올림픽 폐막식에서 올림픽 성화가 꺼진 뒤 30년 만에 한국에서 다시 성화의 찬란한 불꽃이 타오르는 순간이다.

역대 동계올림픽에서 성화 점화자는 개최국을 대표하는 스포츠 스타들이 맡아왔다. 김연아는 명실상부한 한국 동계스포츠의 스타다. 피겨 불모지에서 혜성처럼 나타나 세계를 평정했다. 처음 출전한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당시 세계신기록이었던 228.56점을 받으며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4년 뒤 소치올림픽에선 판정 논란 속에서도 은메달을 획득했다.

김연아의 상징성은 메달 색이나 개수로 평가할 수 없다. 누구도 개척하지 않은 미지의 땅을 담대하게 걸어갔고, 열악한 환경과 고난을 이겨내며 세계 최고의 자리에 우뚝 섰기 때문이다. 전 세계 많은 이들은 김연아의 연기를 보며 용기를 얻었고, 도전의 가치를 되새겼다. 또 김연아가 한국 스포츠에 미친 영향은 이루 말하기 힘들 정도다.

김연아는 평창올림픽 개최 과정에서도 힘을 보탰다. 2011년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에서 열린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 당시 프레젠테이션 주자로 나서 평창이 동계올림픽을 유치하는 데도 일조했다.

미국 크로스컨트리 스키 선수인 타일러와 로건은 선수단 대기소에서 나오다 국민일보 취재팀을 만나 “김연아가 성화에 불을 붙이는 장면이 가장 인상적”이라면서 “개회식 각종 세리머니는 완전히 환상적이었다”고 소감을 전했다.

유성열 기자, 평창=이경원 기자 nukuva@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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