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김지방] 러브샷의 추억 기사의 사진
신문사에 들어와 취재를 위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러브샷을 목격하고 경험했다. “러브샷 한번 하지” 이런 얘기가 나오면 조금 주저하거나 빼는 사람들은 있어도 거절하는 사람은 드물었다. 나도 그랬다. 낯설기도 하고 어색하기도 했지만 부추김에 못 이기는 척 팔을 걸었다. 몇 해가 지나니 내가 자청해서 이왕 러브샷 할 거면 진하게 하자며 폭탄주 잔을 든 손을 등 뒤로 한 바퀴 돌리고 있었다.

여성들이 “미투(#MeToo)”를 외친다. “나도 당했다”는 폭로는 진짜 나쁜 성폭행, 성추행, 성적인 괴롭힘만 해당하는 줄 알았다. 미투 게시판을 들여다보니 그게 아니었다. 노래방에서 어깨에 손을 올렸다든지, 신입직원 환영회에서 춤과 노래를 강요했다든지, 회식 자리에서 하기 싫은 러브샷을 시켰다며 “정말 싫다”는 글들이 굴비처럼 줄줄이 이어졌다. 사실은 싫었는데 그동안 말하지 못했다는 거다. 격렬하게 토로하는 걸 보니 겉으로는 웃었을지 몰라도 속은 썩어 문드러졌었나 보다.

나도 여러 번 “러브샷! 러브샷!” 외쳤던 기억이 떠올랐다. 벌떼에게 쏘인 듯 뜨끔 뜨끔했다. 러브샷을 권유(?) 받은 여자들이 뒤로 빼고 머뭇거리는 게 예전의 나처럼 수줍고 어색해서 그런 줄로만 생각했다. 힘껏 사랑의 한 잔을 기울이게 만드는 게 다 아이스브레이킹(Ice-breaking)이라고만 여겼다. 혹시 내 행동에 불쾌한 느낌을 가졌던 사람은 없었을까 생각하니 미안한 생각이 든다. 누가 나에게 “유, 투”라고만 할 것 같아 불안하기까지 했다. 노골적으로 만지고 희롱한 행동은 명백하게 사과하고 응당한 처벌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그쳐선 안 되겠다 싶었다. 일상에 만연한 많은 불쾌한 행동은 대부분 성희롱인지 아닌지 애매모호한 경계에 걸쳐 있다.

사무실에서 담배 피우던 습관이 이젠 사라졌듯이, 이번 기회에 이런 관습도 따끔하게 지적하고 고쳐야 하지 않을까. 그래, 이젠 러브샷을 권하지 말아야지 결심했다. 이젠 아무리 기분이 좋아도 노래방 가자고 편하게 말하지 못할 것 같아서 아쉽긴 하지만 이거 하나라도 바꿔야겠다.

그런데 직장생활이 너무 데면데면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것저것 조심조심하면 소통은 제대로 될까 하는 ‘아재스러운’ 우려도 스멀스멀 올라온다. 심란한 마음을 쉬게 하려고 미국 드라마를 켰다. 예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게 보였다. 시카고의 법률사무소가 배경인데, 인턴으로 들어온 여직원이 까마득히 높은 상사에게 할 말을 똑 부러지게 하는 거다. 자신에게 부당한 지시가 있으면 항의하고, 상사가 업무지시를 제대로 못하면 그걸 또다시 따진다. 한국 같으면 싹수없다는 소리를 듣기 딱 좋은데, 미국에서는 그게 자연스럽고 당연하다.

직장 분위기가 저렇다면, 노래방에서도(“선배님들은 즐겁게 노세요. 저는 퇴근할게요”라고 할 가능성이 더 높겠지만) 상사가 어깨에 손 올리면 “이 손 좀 치워주시죠”라고 말하고 러브샷 하고 싶지 않으면 “저는 혼자 마시겠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럼 “노래방에 가자”는 말도 좀 더 편하게 할 수 있을 것 같다. 자기가 싫으면 싫다고 하겠지.

임은정 검사가 그랬다. 미투 고발은 남녀의 문제가 아니라 권력의 문제, 갑과 을의 문제라고. 맞는 말이다. 미투 운동이 널리 폭로된 몇몇 검사와 회장님과 시인에게 비난을 퍼붓고 처벌하는데 그쳐서는 안 된다. 그건 손가락 운동일 뿐이다. 지나치게 경직되고 수직적인 한국 사회가 변해야 진짜 성공이다.

상사가 입구에 등장하면 직원이 먼저 달려가 자동문을 열거나 엘리베이터를 잡아 두는 장면부터 없애야 끙끙 앓다 미투 같은 폭로를 하는 일 없이 제때제때 성희롱 성추행을 근절할 수 있다. 이건 사소하지만 꽤 큰 변화다. 이거야말로 진짜 적폐청산일지도 모르겠다. 이 청산 작업에는 우리 모두가 청산의 대상이고, 청산의 주체다.

김지방 사회부 차장 fatty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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