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화는 시대다] 대중영화 걸작, 대중에 버림받다 기사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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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지켜라!'는 두 가지 면에서 유명하다. 첫째는 한국영화사의 가장 기발하고 독창적인 데뷔작 중 한 편이라는 점이고 둘째는 한국영화사의 가장 비운의 작품 중 한편이라는 점이다. 그 기발함과 독창성에 비한다면, 아니 사실은 그것 때문이지만, 개봉 당시 이 대중영화의 흥행 성적은 처참했다. 다행히도 이 영화는 처음부터 전문가들의 전폭적인 호평을 얻었고 이후에 소수의 열광적 지지자들 사이에서 희귀한 컬트작으로 관심을 모아갔으며 마침내 시간이 흘러 공히 걸작의 지위에 올랐다.

2000년대 초반 한국영화계에 얼마간 창의적 분위기가 주입되었을 때 만들어졌던 이 작품은 대중의 상투성을 훌쩍 뛰어 넘은 대중문화적 상상력 때문에 오히려 대중에게 버림받은 아이러니한 대중영화였다. 그 문화적 저항선이 어디쯤에서 어떻게 형성되었던 것일까 가정해 보는 것도 오늘의 짧은 문화 기술사의 한 일환이 되기는 할 것 같다.

영화를 준비하면서 감독은 이런 장면을 상상했다. 자신이 뭔가 이 세상의 중대한 인물이라고 착각하는 한 아들이 그 내용을 어머니에게 털어 놓는 장면이다(감독 장준환을 알린 단편 영화 ‘2001 이매진’도 자신이 존 레논이라고 착각하는 남자에 관한 영화였다). 혹은 감독은 이런 뉴스를 접하고 흥미로워했다. 당시 할리우드의 젊은 미남 배우 리어나도 디캐프리오를 외계인이라고 믿는 집단이 있었는데, 그들은 주장하기를, 디캐프리오가 앞 머리카락으로 외계인과 수신하고 지구 정복을 위해 미모로 여성들을 유혹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감독은 이런 종류의 영화도 떠올렸다. 영화 ‘미저리’, 스티븐 킹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작품으로 어느 소설의 광팬이 소설가를 감금해 놓고 자신이 원하는 이야기를 지어내기를 요구하는 공포영화다. 만약 그 미치광이 주인공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풀어가 보면 어떠할까 감독은 생각했다고 한다.

감독의 이 세 가지 관심사에는 공통점이 한 가지 있다. 하나 같이 과대망상증(자)의 이야기라는 사실이다. ‘병든 지구’라는 뜻을 지녔다고 감독이 말한 이 영화의 주인공 병구(신하균)가 바로 그 과대망상증자다. 병구가 화학공장 사장인 강만식(백윤식)을 납치 감금하는데 이유는 강만식이 지구를 위해하려는 외계인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인적이 드문 산 속, 예전에는 광부들의 목욕탕이었으나 지금은 폐가에 가까운 집에 홀로 사는 병구는 비밀 지하실에 강만식을 가둬 놓고 네가 외계인이라는 것을 인정하라며 추궁하고 고문한다. 자신만이 외계인의 계략에서 지구를 구할 수 있는 영웅이라고 병구는 믿고 있고 순이(황정민)라는 인물이 곁에서 병구를 돕고 있다. 한 형사가 수사망을 좁혀오면서 상황은 점점 복잡해진다.

과대망상증의 분위기, 그러니까 상황을 실제보다 과장하는 헛된 생각에의 증상이 가득해서일까. ‘막무가내’와 ‘능수능란’이라고 부를 만한 이야기 방식이 영화 속에는 뒤섞여 있다. 이야기는 뻔뻔하고 과장되게 전개되는 것 같다가도 때로는 능숙하고 노련하게 부풀려지면서 전개되어 간다. 예컨대 어떻게 병구 혼자만이 외계인의 존재를 알게 된 것일까 질문을 던질 때 영화 속에는 납득할 만한 근거가 없다. 반면 강 사장의 정체가 밝혀지는 과정에서 그를 일종의 스토리텔러로 내세워 무엇이 꾸며낸 이야기이고 무엇이 진짜 이야기인지 모르게 혼선을 주거나 반전을 시도하는 대목에서는 감독의 일급 이야기꾼의 실력이 빛난다. 무언가 정연한 이야기를 기대했던 관객이라면 이런 식의 부정교합에 혼란을 혹은 저항감을 느꼈을 법도 하다.

이야기만 그러한 것은 아니다. 어쩌면 더 기발해서 더 강력한 저항감을 일으켰을 법한 것은 인물들의 유형이다. 먼저 순이를 보자. 그녀를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까. 아마도 그녀는 시골 마을을 종종 방문하곤 하는 허름한 서커스단의 단원인 것 같다. 그녀가 어떻게 병구를 만났는지는 역시 알 수 없지만 그녀만이 병구의 조력자다. 이 기이한 인물은 모조적이고 다면적이고 시원적이어서, 낯설다. 가령, 서커스 단원인 그녀에게는 이국성, 촌스러움, 향수 등 서로 어울리지 않는 이미지가 한 몸에 배어 있다. 순이는 쉽게 해석되질 않는다. 한편 순이는 범죄를 저지르기에는 너무 순진하고(그녀는 혼자 있을 때 인형 놀이를 한다) 선한 인물이다. 이 인물이 지닌 극과 극의 면모들은 영화의 기발함에 그러니까 관객의 저항선을 형성한 그 기발함에 큰 역할을 한다.

순이가 너무 낯설게 느껴졌다면 병구는 너무 가깝게 느껴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물론 영화사에서의 과대망상증 환자들은 한 둘이 아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소설가를 감금해 둔 ‘미저리’의 그녀도 그 중 하나다. 하지만 병구에게는 장르적 요인이 아니라 사회적 요인이 있다. 아니, 장르적인 병구가 있고 사회적인 병구가 있다고 해야 더 맞을 수도 있겠다. 영화는 장르에서 시작했으나 사회적 문제들을 드러내면서 병구가 우리에게 얼마나 가깝고 흔한 인물일 수 있는지를 묘사해 간다. 왕따, 약자, 가난한 자, 고아, 그래서 아무도 보살펴주지 않아 스스로 살아가야만 하는 인물. 병구는 강 사장에게 “내가 미쳐갈 때 당신은 어디 있었느냐”고 울부짖는다. 스스로를 영웅이라고 믿고 있으면서도 한편 자신이 미쳐 있다는 사실도 함께 알고 있는 이 기이한 인물 병구는 어떤 장르적 상상과 현실적 불운 사이에서 기묘하게 동요하지만, 가끔씩은 너무 가깝게 우리 주변의 어두운 지점들을 건드리는 탓에 관객으로 하여금 어떤 위태로움을 느끼게 만든다.

이상과 관련 있을 것이다. ‘지구를 지켜라!’에는 장르적 유희가 벌어지는 가운데에서도 눈을 돌리고 싶을 정도로 잔혹한 어떤 순간들이 발생한다. 가령 병구는 강 사장이라는 악덕 기업주에게 끝내 당하고 만다. 강 사장은 탈출 시간을 벌기 위해 병구가 어머니에게 독약을 먹이도록 속임수를 부린다. 병구가 어머니를 살리기 위해 독약인 줄도 모르고 약을 먹이는 이 장면은 아이러니하면서도 참혹하다. 강자에게 늘 당하는 약자의 비껴날 길 없는 운명 같은 것이 예감되어서인지도 모르겠다. 병구 부모가 겪어 온 불운한 과거사도 그 힘의 불평등과 연관이 있는데 그들은 1980년대 한국의 악덕 기업들이 행한 폭력에 당해온 인물들의 초상이 된다. 어느 면에서 그저 단순하고 간단한 장르적 유희를 바란 이들이라면 이런 참혹함이 부담스러웠을 수도 있겠다.

마침내 강 사장이라는 인물을 말하지 않을 수 없는데 어쩌면 이 인물은 주인공 병구보다 더 흥미롭다. 놀랍게도 영화의 종반부에 이르면 병구가 말한 대로 강 사장이 외계인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병구가 말한 외계의 왕자가 바로 강 사장이었다. 그러니까 흥미로운 반전이다. 병구는 광인이면서도 광인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리고 병구가 장르적 인물에서 사회적 인물로 전환되어 간 것과 반대로 강 사장은 사회적 인물에서 장르적 인물로 전환되어 간다. 다만 강 사장은 지구인이건 외계인이건 여전히 최강자에 속한다.

이 절대적 강자가 병구에 의해 감금되어 있을 당시 선보이는 우스꽝스러운 외양이 이 영화의 혼성적인 스타일을 대변한다. 강 사장은, 즉 중년의 배우 백윤식은 거의 영화 내내 민머리, 꽃무늬 팬티, 개 목걸이 등을 차고 있어야만 했다. 이 조악하고 싸구려 같은 블랙 유머 혹은 B급 장르 영화의 정서는 혼성적인 기호들을 가져와 유머러스하면서도 공포스러운 이물감을 창조한 이 영화의 대표적인 특징이었다. 이것 또한 쉽게 받아들여지진 않았던 것 같다.

강 사장이 외계인 왕자로 변하자 마지막 저항선이 더해진다. 악독한 기업주가 사실은 우주의 강력한 지배자이기도 했다는 것, 게다가 그가 지구를 만들기도 했고 소멸시키기도 한다는 것. 이 황당하고 씁쓸한 결말 혹은 흔한 말로 너무 일찍 도착한 과격한 상상력은 당대의 일반 관객들에게 끝내 환호 받지 못했다.

‘지구를 지켜라!’는 희극적으로 시작하지만 마침내 비극적으로 종료된다. 지구가 파괴되어 버리는 것이므로 지구인도 사멸하게 되는 이야기인 것이다. 그러니까 이건 인류가 처하고 싶지 않은 아주 무서운 묵시록의 일례인 셈이다. 인류가 가장 두려워할 만한 것을 아주 웃기게 다룬 한국대중영화의 걸작 ‘지구를 지켜라!’는 이러한 이유들로 당대의 관객과 불화하게 되었을지도 모를 일인 것이다.

■장준환 감독은…
화려한 데뷔·기나긴 공백… 주무기는 기발한 상상력

한국영화아카데미 11기를 졸업했다. 이 기수는 특별하다. 봉준호와 장준환(48·사진)이라는 촉망받는 감독 두 사람이 속해 있었기 때문이다. 둘은 신인 때부터 비교당하기 일쑤였다. 한쪽에서는 봉준호 감독을 또 한쪽에서는 장 감독을 한국영화를 짊어질 미래의 감독으로 꼽았다. 둘은 '유령'(1999)에서 공동 각본가로도 일했다. 장 감독의 장점은 특유의 상상력이었다. 단편영화 '2001 이매진'(1994)의 주인공은 영국의 유명 음악인 존 레논이 사망한 날 태어난 자신이 존 레논의 환생이라고 생각한다. 이 과대망상증적 인물형은 마침내 장편 데뷔작 '지구를 지켜라!'에서도 주인공이 된다.

'지구를 지켜라!'는 개봉된 그해 국내의 각종 상을 휩쓸 정도로 평이 좋았다. 하지만 흥행에서 참패하여 이른바 한국영화의 '저주 받은 걸작' 1순위에 오르는 전설이 됐다. 이후 장 감독이 차기작을 준비한다는 소식은 자주 들려왔다. 그 중에서도 어린 시절 방귀를 많이 뀌어 놀림감이던 아이가 성인이 되어 마침내 인류를 지키는 영웅이 된다는 설정의 '파트맨'은 장준환 프로젝트 1호로 늘 거론되곤 했다. 하지만 제작비 등의 문제로 결국 완성되지 못했다. '타짜 2'의 감독으로 물망에 올라 프로젝트를 얼마간 진행한 적도 있다. 마침내 '지구를 지켜라!' 이후 9년 만의 재기작은 '화이: 괴물을 삼킨 아이'(2013)였다. 청부살인집단에 의해 길러진 아이에 관한 이야기다. 다시 4년 뒤, 1987년 민주항쟁을 다룬 '1987'(2017)을 만들게 된다.

<정한석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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