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직장 내 괴롭힘’  차별금지법이 해법? 기사의 사진
고용부 의뢰 용역보고서, 입법적 대안 제시

보호 대상 확대되는 장점에도
전문가 시각은 대부분 회의적
괴롭힘 문제 차별로 한정 어렵고
반대하는 여론 설득도 쉽지 않아


고용노동부의 ‘직장 내 괴롭힘 대책 마련을 위한 실태조사’ 용역보고서(이하 보고서)는 입법적 대안으로 차별금지법 제정을 제시했다. 직장 내 괴롭힘을 차별의 한 형태로 볼 수 있고, 차별금지법으로 기존 괴롭힘 관련법의 사각지대를 메울 수 있다는 진단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의 시각은 회의적이다. 직장 내 괴롭힘 문제는 단순히 차별 문제로 한정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을 뿐더러 현행법을 개선하는 게 우선이라는 것이다. 차별금지법 논의과정에서 발생한 여론 반발과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서도 제외된 점을 감안하면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있다.

12일 국민일보가 입수한 보고서는 “차별금지법은 괴롭힘이 인격과 인권을 침해하는 차별일 수 있다는 점에서 반드시 필요한 법제”라고 설명했다.

차별금지법 도입의 장점으로는 적용 대상 확대를 들었다. 예컨대 근로기준법의 균등처우 규정이 영향을 미치는 직장 내 괴롭힘은 제한적이다. 사용자와 근로관계를 맺은 근로자를 적용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특수형태 고용 종사자처럼 근기법상 근로자로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는 제도 사각지대에 놓인다. 사용자가 아닌 동료나 고객 등으로부터 받는 괴롭힘도 적용 대상에서 배제된다. 법상 근로자 여부를 떠나 모든 사람을 적용 대상으로 삼을 수 있고, 괴롭힘 가해자가 사용자가 아닌 사안까지 포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차별금지법이 효과적이란 설명이다. 남녀고용평등법, 장애인차별금지법, 산업안전보건법 등 다양한 차별금지 관련법이 저마다 직장 내 괴롭힘을 다르게 정의하는 등 기존 체계의 혼선을 정비하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차별금지법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한 대안으로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도 제시됐다. 의도적이거나 악의적인 괴롭힘에는 징벌적 손해배상을 적용하자는 것이다. 보고서는 “사업주에게는 강력한 규제동기가 되면서 피해자를 적어도 금전적인 측면에서는 실질적으로 구제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현행 괴롭힘 관련법이 입증이 까다로운 형사처벌을 전제해 실효성이 떨어지는 점을 보완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반론도 만만치 않다. 우선 괴롭힘을 차별로 한정지을 수 있는지부터가 문제다.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박지순 교수는 “직장 내 괴롭힘은 굉장히 다양한 형태로 표출되고 있다”며 “이를 차별이라는 카테고리에 넣어 판단한다면 오히려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논의 범위가 축소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기존 차별금지법제와의 관계 설정도 문제다. 한국에는 이미 차별과 관련된 다양한 법·제도가 구축돼 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오히려 새로운 차별금지법이 기존 차별금지법제와 중복·충돌하면서 혼란이 야기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는 차별금지법을 바라보는 문 대통령의 기본적 인식이기도 하다. 문 대통령은 지난 대선에서 차별금지법 도입이 따로 필요치 않다는 견해를 피력했었다.

차별금지법에 대한 여론 반발을 넘기도 쉽지 않아 보인다. 차별금지법은 인종·학력·고용뿐만 아니라 동성애자를 비롯한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금지 등도 포함하고 있다. 이는 그동안 지속적으로 시도된 차별금지법이 번번이 좌초됐던 이유다. 2007년 정부가 차별금지법을 입법예고한 이후에도 다수의 의원들이 거의 회기마다 차별금지법을 발의했었다. 하지만 종교계 등 여론 반발에 밀려 폐기되거나 철회됐었다.

고용부 관계자는 “아직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정의조차 불분명한 게 현실이라 대안마련까지는 갈 길이 멀다”며 “용역보고서 등을 참고해 어떤 대안이 현실적인지 검토해 나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정부 차원의 종합대책은 이르면 3월 발표될 예정이다.

세종=정현수 기자 jukebox@kmib.co.kr

그래픽=이은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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