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사초롱-김다은] 4차 산업혁명과 ‘빨리빨리’ 기사의 사진
한 고등학교에서 수학시험을 치렀다. 두 학생의 답이 정답이었다. 그런데 한 학생은 99점을 받고 다른 학생은 79점을 받았다. 이것이 가능한 일일까. 물론 한국인의 시각에서 보면 매우 부당하고, 있을 수도 있어서도 안 될 일이다. 하지만 프랑스 학교에서는 가능하며 정당한 일이기까지 하다. 한국의 명문 고등학교에 다니던 학생이 집안 사정으로 프랑스 유학이 불가피해졌다. 언어가 딸려 다른 과목들은 따라잡기 어려웠으나, 수학 수업만은 소위 누워서 떡 먹기였다. 더구나 50분에 20문제 이상을 푸는데 익숙해있던 그는 3시간에 7문제를 풀라는 수학 시험에 의기양양했다. 다른 학생들은 첫 시간이 지나도록 시작도 못한 채 끙끙거리고 있었지만, 그는 한 시간도 못되어 다 풀어 치우고 일어났다. 하지만 그가 받아든 점수는 79점이었다. 똑같이 정답을 쓴 학생들 중에 최고 점수가 99점이었다. 그는 수학 선생님께 항의했다.

선생님이 내민 99점의 답안지에는 문제를 푸는데 필요한 논리적 전개와 설명이 매우 정연하게, 그리고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다른 학생들은 어떻게 풀까를 이리저리 궁리하면서 한 시간을 보낸 뒤, 자신만의 논리와 풀이를 보여주고자 나머지 2시간을 충분히 사용했던 것이다. 수학 선생님은 생각하는 중간 과정의 즐거운 고민이 매우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100점에서 1점을 뺀 것도 더 깊이 사유할 수 있도록 여지를 남긴 선생님의 배려였다. 20년 전에 들은 한국 유학생의 경험담이다.

교육부가 발표한 새 정부의 고등교육정책 추진 방향을 보면 4차 산업혁명을 앞두고 ‘높은 전문성을 갖춘 창의융합형 인재’ 양성이 포함돼 있다. 우리나라 고등학교에서는 요즘에도 50분에 20문제 이상의 수학 문제를 풀고, 심지어 비 수능과목은 50분에 두 과목씩 해치우는 학교도 있다고 들었다. 아직도 ‘빨리빨리’와 정답만 찾는 식의 교육 환경에서 ‘전문성을 갖춘 창의융합형 인재’ 양성이 어떤 식으로 가능할까 궁금하다. 그런데 여기서 ‘빨리빨리’를 한국인의 기질로만 인식해서는 해결책이 없다는 점이다. 50분에 20문제를 풀어야 하는 수학시험과 3시간에 7문제를 풀어야 하는 수학시험을 대하는 사람의 태도와 심정이 어찌 같겠는가. 한국의 수능시험에 해당하는 프랑스 바칼로레아는 100% 주관식 서술형으로 정답과 오답을 가리는 것이 아니라 사고의 깊이를 재는 시험으로 유명하다. 그나마 정답이 있는 수학시험에서조차 학생들은 수학자처럼 고민하며 시험을 치르는데, 이 과정에서 원리의 수학에서 관점의 수학이 가능해지고, 수학적 법칙들을 뛰어넘는 수학적 언어와 사유 현상을 단련할 수 있게 된다. 수학이 그러할진대, 문학이나 역사나 다른 과목에서도 학생들은 창의적인 사유로 공부하는 재미와 전문성을 키워나갈 수밖에 없다.

2025년까지 노동력 40%가 로봇으로 대체될 것이라고 한다. 인공지능(AI) 시대의 특성들 중의 하나가 속도(velocity)이고 보면, 빨리빨리 교육이 아무리 빨라도 로봇들을 이길 확률은 점점 낮아질 것이다. 루이스 캐럴의 ‘앨리스’가 만난 ‘붉은 여왕’처럼, 경쟁관계에서는 빨리 달리는 것이 앞서는 혹은 제자리를 유지하는 방법이다. 하지만 창의적인 공생관계에서는 느리게 움직이는 쪽이 더 유리할 때가 많다. 가령 프랑스 수학시험에서는 시간을 더 많이 쓰면서 자신의 논리를 충분히 어필하는 것이, 그리고 친구끼리 토론하며 저마다의 창의적인 풀이를 지속하는 것이 그들의 공동 목표인 바칼로레아에 더 유리한 셈이다. 바칼로레아에 합격하면 어느 지역 어느 대학교나 지원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진정 우리 교육이 전문성을 갖춘 창의융합형의 인재를 추구한다면, 무엇보다도 달리는 ‘붉은 여왕’의 손을 놓아야 한다. 그다음 경쟁 시스템에서 벗어나 공생 시스템으로의 새로운 교육 환경이 구축돼야 할 것이다. 미래에 대한 대안으로서의 공생 시스템이 더욱 절실한 이유는, AI 시대에는 인간의 경쟁 상대가 인간만이 아니라는 점이다.

김다은 (소설가·추계예술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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