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김혜림] 아들에게 앞치마를 기사의 사진
1990년대 초 프랑스 파리로 출장을 갔었다. 파리 교외에서 열리는 ‘프르미에르 비종’을 취재하기 위해서. 프르미에르 비종은 파리컬렉션에 앞서 열리는 원단전시회로, 다음 시즌에 유행할 소재와 컬러 패턴 등을 가늠할 수 있어 디자이너들이 찾는 전시회다.

볼거리가 가득했던 파리 출장에서 가장 또렷하게 기억에 남았던 두 가지. 미라보 다리와 프랑스빵 바게트다. 파리에 도착하자마자 초행인 기자들은 미라보 다리를 꼭 가봐야 할 곳으로 꼽았다. 이미 한두 번 와 본 선배들은 시큰둥했다. 현장에서야 그 이유를 알았다. 한강에 익숙한 우리에게 센강은 동네 개천 수준이었고, 미라보 다리는 여러 개의 다리 중 가장 초라했다. 우리가 보고 싶었던 미라보 다리는 시인 기욤 아플리네의 문학적 상상력이 빚어낸 환상이었다.

바게트는 요리에 관한 한 초보를 벗어나기 힘들었던 주부에게 요샛말로 ‘그레잇’으로 다가왔다. 출장 중 묵었던 호텔 부근에 있는 베이커리는 문 열기 전부터 줄이 길었다. 현지 가이드에게 그 이유를 물었다. 그 집 바게트가 맛있어서란다. 갓 구운 바게트를 사서 아침 식사를 한다고. 그때 “왜 우리는 매일 먹는 밥을 사먹을 수는 없을까?” 그런 생각을 했었다. 파리 출장을 다녀 온 몇 년 뒤 우리 식탁에도 즉석밥이 올라 왔다.

요즘 즉석밥뿐만이 아니다. 반찬도 다양하게 나온다. 저녁 11시 전까지 주문하면 다음 날 새벽 7시까지 현관 앞까지 배달해주는 곳들도 많다. 특히 올해는 설 상차림을 간편식으로 구성한 세트 상품을 백화점들이 앞다퉈 내놓고 있다. 떡국 떡부터 각종 전, 떡갈비, 식혜 등 한상을 너끈히 차릴 만한 메뉴들이다. 따뜻하게 먹어야 하는 것은 전자레인지에 슬쩍 돌려 그릇에 담아내기만 하면 된다.

편안하게 준비한 설 식탁에 서운함을 내비칠 시어머님들도 적지 않을 듯하다. “명절에는 집안에 기름 냄새가 ‘쫘악’ 퍼져야 하는데, 이건 명절인지 뭔지….” 이렇게 중얼거리는 분 왜 없겠는가. 또 손맛이 뛰어난 분들은 더욱 서운할 터이다. 내 자식들에게 할머니, 할머니의 할머니로부터 물려받은 맛내기 비결로 빚어낸, 맛있는 음식을 먹일 수 없다는 아쉬움이 크겠다. 그런 분들이라면 아들에게 그 비결을 전수해줄 것을 권하고 싶다. 시어머니와 앞치마를 두른 남편이 주방에서 요리할 때 거실에서 TV를 볼 며느리는 거의 없지 않을까. 아들 며느리가 같이 준비해 차린 설날 식탁, 간편식에 견주겠는가.

김혜림 논설위원 겸 선임기자

그래픽=이영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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