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영 칼럼] 말할 권리 뺏는 전략적 봉쇄소송 기사의 사진
홍준표 대표와 BBQ, 수억원대 소송 통해
언론에 재갈 물리려는 것 아니냐는 주장 있어

공공영역 비판 목소리 차단할 의도 있는
‘입막음 소송’ 규제 움직임 확산

경력이 제법 된 기자치고 자신의 기사 때문에 한 두 번 항의받지 않은 경우가 있을까. 오래전 일이다. 출입처 기관장의 비서가 씩씩거리며 나를 찾았다. 언론 대응은 늘 공보관이 맡았는데 부속실 서기관급 비서가 직접 연락한 걸 보니 위로부터 단단히 쓴소리를 들은 것 같았다. 당장 기사를 내리지 않으면 언론중재위원회에 제소하고 법적대응하겠다고 흥분했다. 집요하게 부탁한 데다 평소의 정의(情誼)를 생각해 내용을 조금 수정해줬고, 결국 그 정도 선에서 매듭지었다. 당시엔 기사를 둘러싼 다툼을 이런 식으로 당사자들끼리 셀프봉합하는 사례가 허다했다. 어지간하면 언론중재위원회에 잘 넘어가지 않았고 법적분쟁으로 악화되는 것은 극히 예외적이었다.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다. 기사에 불만을 드러내 언론중재위를 찾는 것은 예사고 걸핏하면 사법적 판단을 구하려고 한다. 언론사의 대처는 주도면밀해졌다. 기사 취재와 작성, 게재 과정에서 사실 확인을 엄격히 하고 비판기사는 반론권을 보장하려 애쓴다. 기사가 잘못됐다고 판단되면 삭제하고 반론보도를 수용하는 등 전반적으로 개선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사 시비는 끊이지 않는다. 특히 기자와 오보는 어떻게 보면 숙명이다. 이른바 ‘단독(성)’ 기사를 통해 특종을 노리면 오보의 위험성은 더 높다. 지금은 정치인이 된 인사는 기자 시절 사상 초유의 현직 장관 수뢰혐의 구속기사를 특종보도했다. “나름 확실하다고 생각했지만 만에 하나 틀렸을 경우를 생각하니 앞이 캄캄했다”고 그는 털어놨다.

최근 언론과 취재원의 관계를 되돌아보게 하는 사례가 있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가 MBN 기자와 보도국장에 대해 5억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류여해 전 한국당 최고위원이 수년간 홍 대표에게 성희롱을 당했다는 기사가 홍 대표 비방 목적이 있는 악의적 허위보도라는 이유에서다. MBN이 기사를 내리고 사과를 했음에도 손배소가 이뤄졌다. 이 액수는 정치인이 언론에 요구한 소송 규모로는 최대다. 통닭업체 BBQ가 비판적 기사를 쓴 CBS와 SBS 기자를 상대로 낸 각각 10억원대의 소송도 현재 진행 중이다.

이 두 사안이 논란을 낳는 것은 우선 배상금액이 상식을 뛰어넘을 만큼 크다는 점과 언론중재위를 거치지 않고 바로 법정으로 갔다는 사실에 있다. 보도책임자는 빼고 취재기자만을 상대로 법정 싸움을 벌이는 BBQ 태도 또한 일반적이지 않다.

두 사례에 대해 언론에 재갈을 물리려는 ‘전략적 봉쇄소송’이 아니냐는 반응이 있다. 이 소송은 권력이나 자본이 비판적 목소리를 차단·억제·위축시키기 위해 별도의 목적을 염두에 두고 벌이는 법적 다툼을 말한다. 법적근거의 타당성을 엄밀하게 따져 반드시 승소하겠다는 노림수보다 반대자를 괴롭히고 무력화해 자기검열의 여파를 타인에게까지 확산하려는 의도가 담긴 ‘입막음 소송’으로 간주된다. 정책을 비판하는 개인이나 시민단체에 대해 정부가, 시장진출을 막는 중소상인을 상대로 대기업이, 야당 정치인이나 진보단체를 겨냥해 보수단체가 주로 써먹었다. 이명박 박근혜정권 때 절정을 이뤘다. 공공영역을 비판하는 본질적 기능이 있는 언론 역시 대상에서 예외가 아님은 물론이다.

국가든 개인이든 누구나 소송할 권리가 있다. 그러나 소권(訴權)은 신의성실의 원칙에 맞고 합목적성을 벗어나 남용돼서는 안 된다는 점은 상식이다. 전략적 봉쇄소송을 합리적으로 규제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 이유다. 독일 프랑스에서 이런 움직임이 퍼지고 있으며 미국의 경우 특히 언론에 대한 전략적 봉쇄소송을 제한하는 곳이 31개 주에 이른다. 수정헌법 1조에 명시된 언론자유를 심각하게 침해한다고 본 것이다.

우리도 이런 기류가 확산되고 있다. 국회 입법조사처는 전략적 봉쇄소송의 규제법 도입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지난해 2월 더불어민주당 안호영 의원에 이어 그해 11월 같은 당 금태섭 의원이 관련 내용을 담은 민사소송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피소자가 공공의 이해에 관한 의견 표명이 소송의 배경이라는 점을 법원에 소명하고 법원이 이를 인정하면 해당 소송을 기각할 수 있다’는 조항을 신설한 것이다. 법원이 전략적 봉쇄소송이란 점을 인정하면 소송 자체가 진행되지 않는다는 의미다.

기자가 ‘기레기’로 비하되는 풍토에서 표현의 자유 신장을 언급하는 것이 달갑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전략적 봉쇄소송 규제는 언론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다른 목소리를 내지 못하게 하는 사회는 결코 발전할 수 없다는 점에서 우리 모두의 관심 사안일 수밖에 없다.

정진영 논설위원 jyj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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