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김정은이 문재인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제의한 뒤 연기된 한·미 연합 군사훈련을 더 늦추거나 축소해야 한다는 성급한 주장이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어렵게 조성된 화해 분위기를 정상회담으로 이어가기 위해서는 예정된 군사훈련을 중단하거나 축소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정치권에서는 공격적 훈련 프로그램을 방어훈련으로 전환하는 방법으로 수위와 규모를 조절할 필요가 있다는 발언이 나왔다. 심지어 이미 한 차례 연기됐기 때문에 정상적인 규모로 재개하는 것은 어차피 불가능하다는 궤변도 등장했다.

사실 곧 전쟁이 일어날 것 같던 지난해를 생각하면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갑작스럽게 진전된 남북의 교류는 고무적이다. 무엇보다 북한이 적극적이다. 조선중앙통신은 김정은이 “좋은 분위기를 더욱 승화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평창에서 강경한 입장을 고수했던 마이크 펜스 부통령뿐 아니라 대북 선제공격론이 확산되면서 뒤로 빠졌던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이 북한과의 대화 가능성을 언급하는 등 미국의 분위기도 나쁘지 않다. 그래서인지 대화의 물꼬가 트였으니 남북 정상이 곧 만나 북핵 포기와 전면적 경제협력을 약속한다는 낭만적인 그림을 상상하는 들뜬 분위기가 퍼지고 있다.

그러나 냉정해야 한다. 지금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봐야 한다. 북한은 지난해 11월 ‘핵무력 완성’을 선언한 이후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받기 위한 굳히기 전략을 펴고 있다. 그래야 미국을 상대로 얻어낼 것이 있다는 판단에서다. 북한의 요구는 한반도에서 미국이 손을 떼라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한·미 연합훈련 축소 및 중단, 주한미군 철수, 한·미 동맹의 폐기를 순차적으로 이루겠다는 것이다. 김정은의 신년사 이후 지금까지 북한은 이 목표를 향해 일관되게 움직이고 있다. 현송월과 김여정의 깜짝 등장을 남북 화해를 위한 결단이라고 아무리 포장해도 본질은 이 전략을 관철시키는 전술적 변화에 불과했다.

한·미 연합훈련 재연기 및 축소 주장이 터무니없는 것은 이 때문이다. 북한을 일단 대화의 장으로 나서게 한다는 과거의 생각을 기계적으로 적용하는 것은 위험하다. 지금 북한은 핵무기로 우리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 남한은 그 위협을 공고한 한·미동맹을 통해 막고 있다. 막는 것만으로 끝낼 수도 없다. 핵이 완전히 폐기될 때까지 위협은 사라지지 않는다. 핵이라는 말조차 꺼내지 못한다면 북한의 누구를 만나도 아무 소용이 없다. 상대는 뻔히 보이는 전략을 집요하게 추진해 하나씩 관철시키고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런데도 우리는 국가안보의 핵심인 한·미동맹을 협상의 카드로 만지작거리고 있다. 신중해야 한다. 북한에 한 걸음 다가가면 미국으로부터 한 걸음 멀어지는 방식의 협상은 결코 성공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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