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은 권력남용… 사법처리 불공정” 62% 이상 기사의 사진
국민일보·공공의창 설문조사

개인이 성폭력 해결 못해
집단서 관심갖고 나서야
피해자 고소당하지 않도록
87%, 명예훼손법 개정 요구


시민 대다수는 성폭력이 남녀문제라기보다는 지위와 권력을 남용한 문제라고 봤다. 성폭력을 당하면 경찰에 신고하겠다는 응답이 절반 이상이었지만 공정하게 사건이 처리될 것으로 기대하는 시민은 33.9%에 그쳤다. 최근 성폭력을 폭로하는 미투(#MeToo)운동이 확산되면서 다시 논의되는 명예훼손죄 개정은 10명 중 9명꼴로 “필요하다”고 답했다. 사법기관에 대한 불신이 쌓이면서 ‘미투’라는 방식으로 개인이 자신의 피해를 공개하는 것을 지지하는 목소리가 두드러진 결과다.

13일 국민일보와 여론조사기관 세종리서치, 비영리공공조사네트워크 ‘공공의창’이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44.5%는 본인 주변에서 성폭력 사건이 벌어졌다고 했다. 둘 중 한 명은 직간접적으로 성폭력을 경험한다는 의미다. 이번 조사는 지난 11일 무선 ARS로 성인남녀 1036명을 대상으로 진행했다. 신뢰수준 95%에 표본오차 ±3.04% 포인트였다.

성폭력을 바라보는 시각을 물었을 때는 지위·권력을 이용한 문제(62.5%)라는 응답이 이성 간 문제(22.6%)라는 의견보다 압도적으로 많았다. 정현미 이화여대 젠더법학연구소장은 “성폭력이 권력 문제라고 답한 이들이 많다는 건 문제의 본질을 제대로 인식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고 평했다.

성폭력을 당했을 때 대처방법으로는 ‘경찰 신고’(55.1%)를 고른 이들이 가장 많았다. 하지만 사법기관이 성폭력 사건을 공정하게 처리한다고 보는지 묻자 부정적 응답이 62.2%로 긍정적 응답(33.9%)의 배 가까이 나왔다. 신고는 하지만 믿지는 못하겠다는 셈이다.

특히 여성의 경우 사법기관이 성폭력 사건을 처리할 때 공정하다(매우 공정+공정한 편)는 응답이 25.1%에 불과했다. 직장 내 성폭력 예방과 대처 제도의 실효성도 낙제점을 받았다. 응답자의 67%는 성희롱 예방교육 등 예방제도가 잘 작동하지 않는다고 봤다. 사후처리 제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응답도 69.5%에 달했다.

이윤호 동국대 경찰사법대학장은 “사법기관이 가해자 검거와 처벌을 중심으로 돌아가다 보니 피해자 입장에서는 공정하지 못하다고 느낄 수 있다”며 “공론화된 성폭력 사건 중에 선고 형량이 낮아 논란이 일었던 점도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법 개정 측면에서는 성폭력 피해자가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등 때문에 입막음을 당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는 의견이 절대 다수(87.6%)였다. 사법기관에 대한 낮은 신뢰도와 실효성이 떨어지는 제도에 대한 우려가 반영된 여론으로 읽힌다.

정현미 교수는 “가해자들이 명예훼손 등으로 맞고소를 하는 것 역시 권력의 문제로 봐야 한다”며 “폭로를 한들 유죄가 나올 것 같으냐고 겁을 주는 자체가 피해자에게 스트레스”라고 꼬집었다.

사건이 공정하게 처리되지 않는다면 개인적 움직임이라도 보호할 수 있어야 한다는 본능이 작용했다는 분석도 있다. 허민숙 이화여대 한국여성연구원 연구교수는 “사법기관에 고소해봤자 가해자는 제대로 처벌되지 않고 2차 피해로 더 많은 상처를 입는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겠다는 의미로 보인다”고 말했다.

임주언 기자 eon@kmib.co.kr

그래픽=이은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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