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구인가? 자코메티의 예술세계] “당신은 자신이 가고자 하는 길을 알고 있습니까?” 기사의 사진
알베르토 자코메티의 대표작 중 하나인 ‘가리키는 남자’. 자코메티가 1947년에 완성한 이 작품은 2015년 미국 뉴욕에서 열린 경매에서 조각 작품 가운데 역대 최고가인 약 1575억원에 낙찰됐다. 필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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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늘 어디로 갈 것인가? 내가 내딛는 발걸음은 내 인생의 목적지와 곧게 연결되어 있는가? 이탈리아의 대문호이자 르네상스의 불을 댕긴 단테(1265∼1321)는 자신의 인생 한가운데를 응시하면서 그 안에 몰입해 ‘신곡’을 남겼다. 그는 자신이 35세가 되던 해인 1300년, 자신도 아직 경험한 적 없는 자신의 마음 속 깊은 곳으로 여행을 시작한다. 이곳은 자신이 무의식적으로 혹은 의식적으로 저지른 죄악이 적나라하게 쌓여있는 ‘지옥’이다.

단테는 자신의 마음 속 깊이 자리 잡은 무절제 폭력 사기라는 죄를 제거하지 않고는 천국으로 가는 정거장인 연옥으로 들어갈 수 없다는 걸 알게 됐다. 단테의 지옥 여행은 인류에게 자신을 깊이 관찰해 정화하는 방법을 제시했다.

‘신곡’의 지옥 편 첫 절은 이렇다. “우리 삶의 여정의 한가운데서.” 단테가 이 문장에서 표현하고 싶은 심정은 이거다. “우리 모두는 인생이라는 여정을 떠난 사람들입니다. 여정은 기분 나는 대로 떠나 집으로 다시 돌아오는 여행과는 달리 자신이 정말 가고 싶고, 다시 돌아오고 싶지 않은 그런 장소를 향해 가는 마음가짐입니다. 내가 내디디는 한 걸음 한 걸음이, 목적지를 향해가는 방향이며, 동시에 목적지가 되기 때문에 감동스럽습니다. 여러분은 그런 목적지를 가지고 있습니까? 그 목적지를 가지고 있다면, 그곳을 향해 가고 있습니까? 그 여정을 떠날 장소와 시간을 알려드리겠습니다. 바로 지금, 여기입니다.”

가장 중요한 건 자신에게 익숙한 환경과 결별하는 일이다. 이 결별을 통해 우리는 꿈을 실현할 수 있다. 단테는 자신을 완벽한 인간으로 만들기 위해, 자신의 죄가 겹겹이 쌓인 ‘마음’이라 불리는 지옥으로 떠났다. 그런 솔직한 여행 이야기는 인류의 고전이 되었다.

‘가리키는 남자’(1947)는 ‘걸어가는 사람’(1960)과 함께 자코메티 조각 중 가장 많이 알려진 작품이다. 자코메티는 입체주의와 초현실주의 사상에 심취하면서 인간 심리의 깊은 곳을 탐구해 표현하였다. 그는 인류 최대의 비극인 세계 2차대전을 경험한 뒤 사르트르의 실존주의를 수용했다. ‘가리키는 남자’는 전쟁 이후 인간의 마음에 등장한 사상과 신에 대한 의심, 그리고 인간의 소외를 숭고하게 표현한 조각이다.

‘가리키는 남자’는 그의 작품 중 가장 노골적이다. 이 작품은 1.8m 크기의 청동 조각상이다. 자코메티는 수많은 시도를 거쳐, 자신을 3인칭 시점에서 관찰하면서 그 묵상의 결과를 적나라하게 표현하였다. 이 조각은 왼손으로는 다른 사람들을 부른다. 그의 시선과 오른손은 자신이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향해 있다.

이 조각은 자신이 인도하고자 하는 다른 사람들을 쳐다보지도 않는다. 자신이 가야할 길, 아니 인간이 가야할 길을 발견한 사람처럼 확신에 차 있다. 이런 자신감은 중세 이탈리아의 시인이 ‘인페르노’에 들어가면서 노래했던 첫 곡의 첫 삼행에서 보인 자신감과 유사하다.

“우리 인생이란 여정의 한 가운데서, 나는 내 자신이 어둠 속에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그 숲은 나를 위한 최선의 길이 숨겨진 장소입니다.”

‘가리키는 남자’는 자신이 가야할 길을 감지하면서 그 길을 묵묵히 걸어갈 준비가 되어있는 구도자다. 그의 왼손은 한없이 빈약하지만, 그가 우리를 부르는 그 왼손은 당당하다. 이 조각을 보는 내가 그를 따라 당장 거룩한 여정을 떠나야만 할 것 같다. 자코메티는 이 조각상에서 거룩한 여정을 자신 있게 시작하는 순간을 영원한 예술로 남긴 것이다.

조각상은 무심하게 정사각형 단(壇)에 서 있다. 조그만 단이다. 이 단은 중국 황제가 제사를 드렸다는 베이징의 천단(天壇)이 아니다. 이 단은 ‘순간의 감각’을 적나라하게 표현한 공간이다. 깨달음의 순간을 확인할 수 있는 곳이다.

‘가리키는 남자’에게는 이 단이 천단이다. 천단은 내가 갈 수 없고 볼 수 없는 저 높은 하늘 위에 있는 장소가 아니라, 자신이 매일매일 사는 바로 이곳이다. ‘이곳’이 그리스의 델피신전이나 바티칸 베드로성당보다 거룩한 이유는 자신이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나는 매일매일 내게 주어진 삶의 위대한 여정을 위해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면서 최적의 삶을 열망한다. 밤을 보내고 아침 해가 돋을 무렵, 그를 훈련시키는 공간이다.

‘가리키는 남자’의 성기, 성기 같은 팔과 손가락. 이 모든 것은 자코메티 자신에 관한 것이다. 그는 자신의 이상을 만질 수 있고 볼 수 있는 물질로 표현해야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 자신감이 있을 때 성스러움과 상스러움은 하나가 된다. 아니, 그런 구별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왼발은 자신이 인도하려는 다른 사람을 향해 있고 오른발은 이제 몸을 틀어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전환돼 있다. 그는 가만히 서 있지 않고 움직인다. 그는 자신이 선택한 거룩한 장소로 갈 것이다. 그는 자유롭다.

‘자유’는 자기 스스로가 원인이자 결과인 상태다. 자신의 생각과 행동에 후회가 없는 상태다. 자유는 스스로 간절하게 원하는 바를 알면서 유유자적하게 노닐 때 슬며시 자신의 모습에 드러낸다. 자유(自由)가 자신이 원하는 바를 거침없이 행하는 자유(自遊)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 나는 어떻게 무심하면서도 고요하게 내가 원하는 바를 행하면서 살 수 있을까. 영어에서 ‘자유’를 의미하는 형용사 프리(free)는 ‘자신의 의지대로 행동할 수 있는 상태’ 이외에 ‘사랑에 빠진 상태’란 뜻이다. 자유는 외부의 어떤 것으로부터 도망치는 수동적인 행위가 아니라, 자신에게 유일한 사랑을 찾아 그것에 빠지는 행위다.

자유로운 상태에서 만나는 존재를 프리와 같은 어원을 지닌 프렌드(friend), 즉 ‘친구’라고 부른다. 자코메티는 왼손으로 자유를 함께 만끽하기 위해 친구를 초대한다. 자유는 내가 내 목숨보다 사랑하는 대상이 있고, 그 대상과 일치가 될 때 모습을 드러내는 보물이다. 그 사랑은 외부의 눈으로 감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심장 안에 숨어있는 보물이다. 내가 마음의 연못으로 깊이 내려가면, 우린 그 보물을 찾을 수 있다.

자코메티는 ‘경계적인’ 인물이다. 우리는 이 경계적인 인물을 ‘괴물’이라고 부른다. 괴물에 해당하는 영어 단어 ‘몬스터(monster)’는 괴물의 의미를 좀 더 명확하게 전달해준다. ‘몬스터’라는 단어의 의미는 ‘뭔가를 구분하는 경계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존재’다. 몬스터는 나에게 익숙하고 게으른 과거로 돌아가라고 호통을 친다.

우리 대부분은 이 경계에서 작아진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소포클레스의 작품 ‘오이디푸스 왕’을 가장 위대한 비극으로 평가했다. 비극은 우리에게 타락하는 주인공을 보여주면서, 우리 자신을 재현해낸다. 이 비극에서 오이디푸스는 테베로 들어가려한다. 이 성문 앞에는 그 안으로 들어가려는 사람들을 막는 괴물이 웅크리고 있다. 이 괴물을 ‘스핑크스’라고 부른다. 그리스어 ‘스핑크스’는 새로운 단계로 진입하려는 사람들의 ‘목을 조르는 존재’다. 스핑크스는 괴물이기 때문에 어느 한쪽에 속해 있지 않다. 머리는 인간, 등은 사자를 연상시킨다. 그리고 새의 날개를 가졌다.

스핑크스는 테베로 들어오려는 자에게 수수께끼를 낸다. 만일 그 문제를 풀지 못한다면 바로 목을 졸라 죽인다. 그러나 그가 문제를 푼다면, 성문을 통해 테베로 들어갈 수 있다.

수수께끼는 이것이다. “아침엔 네 발로 걷고, 오후엔 두 발로, 그리고 밤엔 세 발로 걷는 것이 무엇이냐?” 오이디푸스는 대답한다. “사람입니다. 어릴 때 네 발로 기어 다니고, 어른이 돼선 두 발로 걷고, 늙은이가 되어선 지팡이까지 포함하여 세 발로 다닙니다.”

오이디푸스의 대답을 들은 스핑크스는 당황한다. 그는 경계를 지키는 자로서 자신의 역할을 충분히 이행하지 못한 자책감에 시달리다가 높은 절벽 위에서 몸을 던져 자살한다. 한 단계에서 다른 단계로 넘어가기 위해 그 길을 막고 있는 스핑크스는 사실 오이디푸스 자신이었다. 스핑크스는 오이디푸스가 버려야 할 과거였다.

새로운 여정을 시작한 오이디푸스가 반드시 거쳐야 할 통과의례가 있다. 바로 자신이라는 괴물과 대면하고 그 괴물을 죽이는 일이다. 자코메티는 스핑크스다. 그는 자신을 3인칭으로 관찰하는 인간이 되기를 주저하는 인간들을 상대로 괴물이 되기를 자처했다. 그리고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은 누구냐?” 자신을 심오하게 관조하고, 자신을 위한 감동적인 길을 찾아 나선 현대인에게 자코메티는 자신의 벌거벗은 몸으로 그 길을 제시한다. 자코메티는 묻는다. “당신은 자신이 가고자 하는 길을 알고 있습니까?”

배철현 서울대 종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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