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고승욱] 설에는 윷놀이 기사의 사진
절기(節氣)는 공감하기 어렵다. 초등학교부터 배웠으니 뜻을 모르는 건 아니다. 겨울방학을 동지에 시작해 입춘에 끝나는 것으로 정하면 모를까, 봄에 씨 뿌리고 가을에 거두는 대신 마트에 가는 도시인에게는 무덤덤한 이야기다. 그렇다고 마냥 무시하고 살기도 애매하다. 뭔가 중요한 것을 잊어버린 것 같다. 그렇다면 일단 윷놀이 한 판이 최고다. 말판은 바로 절기를 설명하는 천문학 입문서이다. 말판에는 옛사람들이 생각한 별의 모습이 담겨 있다. 과장을 조금 섞자면 고대 동양 천문학의 근본 원리가 담겨 있다.

말판은 네모난 종이에 둥글게 그리는 게 좋다. 옛사람들은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다고 생각했다. 말이 움직이는 자리는 밭이라고 부르는데 말판에는 밭이 모두 29개다. 한가운데 있는 밭은 추성(樞星·북극성)을 상징한다. 북극성은 지구의 자전축에 있어 우리 눈에는 움직이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별의 움직임을 관측할 때 추성은 언제나 기준점이었다.

방을 뺀 밭 28개는 고대 중국 천문학에서 말하는 28숙에 비유된다. 28숙은 별 28개라는 뜻이다. 달의 공전주기 27.32일에 맞춰 백도(달이 지나는 길)를 28개 구역으로 나눈 뒤 각 구역을 대표하는 별을 지칭하는 말이다. 예를 들어 말판의 첫 번째 밭은 28숙의 각(角)을 뜻한다. 각은 처녀자리에 1등급 별 스피카다. 모가 나오면 말이 가는 다섯 번째 밭은 심(心)인데 전갈자리에서 전갈의 심장에 해당하는 별이다. 모·윷·걸을 쏟아내 순식간에 질러가는 길은 24절기 중 하지를 뜻한다. 말판을 한 바퀴 도는 불운은 동짓날 눈보라를 헤치고 걷는 고달픔이다.

사실 말판에 천문학적 의미를 붙인 것은 조선 중기 이후다. 중국의 천문학을 독창적으로 해석한 사도설과 함께 시작했다. 윷놀이는 삼국시대에도 있었다. 말판을 놓고 사도설 말고도 여러 가지 해석이 있다. 진짜든, 아니든 이런 이야기를 하며 윷을 던지면 설이 훨씬 재미있을 것이다.

고승욱 논설위원

삽화=이영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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