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손병호] 김여정 잊고 이방카 기사의 사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나 그의 장녀 이방카는 김이 많이 샜을 것이다. 이방카와 자주 비교된 북한 김정은의 여동생 김여정이 평창 동계올림픽에 참석해 신드롬을 일으킬 정도로 휘젓고 갔기 때문이다. 심지어 미국 내에서도 김여정과 북한 응원단에 호의적 기사가 쏟아졌다. 이를 두고 폭스뉴스 같은 보수 매체들이 김여정을 좋게 표현한 CNN 방송이나 뉴욕타임스 등의 진보 매체를 질타하는 등 미국 내 ‘김여정 갈등’까지 벌어졌다.

이방카가 오는 25일 폐회식에 참석한다. 개회식에 마이크 펜스 부통령을 단장으로 한 대표단을 보낸 미국으로선 아주 큰 성의를 보인 결정이다. 개회식 참석이었으면 더 좋았겠지만, 어쨌든 트럼프 대통령이 장녀를 보내기로 한 것은 문재인 대통령의 체면을 생각해 내린 결단이었다. 개회식 명단에서 이방카가 빠진 뒤 청와대나 외교부가 트럼프 대통령 가족을 보내 달라고 얼마나 보챘을지는 미뤄 짐작할 만하다.

이방카의 방한이 좋은 성과를 내야 한다. 단순히 일회성 폐회식 얼굴마담 역할로 그쳐선 안 된다. 게다가 정치력이 부족한 ‘지명된’ 부통령 펜스가 방한 기간 딱히 눈에 띄는 외교적 성과를 만들어내지 못했고, 그렇다고 동맹국 국민에게 특별히 어필한 것도 없기 때문에 이방카의 숙제가 배로 늘어난 상황이다.

김여정이 ‘외교 치맛바람’을 한껏 일으킨 뒤여서 이방카의 방한이 ‘미셀러니’ 이벤트로만 채워지면 곤란하다. 이방카에게도 방한 기간 외교적, 정치적 무게감이 부여돼야 하고 방한 중 보이는 모습도 외교·안보와 관련된 행보가 많아야 한다. 이방카가 지난해 11월 일본에 다녀갔을 때처럼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와 밥 먹고, 입은 옷이 예쁘다는 평가만 받고 가면 미국은 어쩌면 김여정에 당한 1패에, 대통령 가족의 ‘빈약한 외교’라는 2패를 기록할지 모른다.

미국이 북한에 2패를 당하면 북·미 관계나 한·미 관계 모두에 좋을 리 없다. 때문에 이방카 행보가 외교·안보와 결부될 수 있도록 미국과 한국 정부가 묘안을 짜내야 한다. 이방카 혼자서 안 되면 다른 유력한 인사들을 동행시켜서라도 그런 모습을 보여줘야 할 필요가 충분히 있다.

가령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방한했다가 짙은 안개 때문에 취소한 비무장지대(DMZ)를 이방카가 대신 방문해도 좋을 것이다. 한반도 분단의 현주소를 확인할 수 있는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방문도 생각해볼 수 있다. 파격적으로 북한 선수들이 출전하는 경기를 관전하고 박수를 쳐주는 것도 나쁘지 않다. 이방카가 북한 선수들에 박수를 칠 경우 북한에도 유화적 시그널로 받아들여질 수 있고, 대화 분위기가 더욱 고조될 수도 있다. 반대로 이런 것들을 하지 않고 이방카가 단순히 폐회식에 잠깐 참석하는 정도로 그치면 김여정과 또다시 비교될 것이다. 역할부터 ‘대통령 딸’과 ‘특사’로 크게 차이 날 수밖에 없다. 그렇게 평가절하될 경우 트럼프 대통령의 마음이 어떨지는 쉽게 유추해볼 수 있다. 무엇보다 한국이나 북한에 대해 안 좋은 감정을 가질 게 뻔하다.

백악관의 속사정을 소개한 미국 언론인 마이클 울프의 책 ‘화염과 분노’에 따르면 이방카는 장래에 대선에 나갈 계획을 세워놓았다. 또 미국의 첫 여성 대통령은 힐러리 클린턴이 아니라 이방카 자신이 될 것이란 생각을 즐겼다.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이방카는 이번 방한 때 외교·안보적 행보로 많은 점수를 따놓아야 한다. 한국에서 역할을 잘해낼 경우 대선 주자의 꿈이 현실로 바뀔 수도 있을 것이다. 특히 북한과 연계해 유화적 목소리를 많이 낸다면, 머지않아 이방카가 탄 에어포스원(미국 대통령 전용기)이 평양에 도착해 김여정의 안내로 북한에 억류된 미국인 3명을 데려가는 일이 벌어지지 말란 법도 없다.

손병호 국제부장 bhs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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