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남호철] 평창의 바람 기사의 사진
강원도 평창군과 강릉시는 한반도의 등뼈 격인 백두대간을 끼고 있다. 큰 줄기의 산맥 사이에 있는 해발 832m의 고개가 바로 영동과 영서를 잇는 오랜 관문인 대관령이다. 강원도를 영동과 영서로 나누는 분기점이자 예부터 동해의 특산물을 내륙으로 실어 나르던 해산물의 교역로다. 영동 지역에서 서울로 통하는 유일한 통로로서 수많은 역사적 사연과 선인들의 애환을 간직하고 있다.

자연이 선물한 가치도 상당하다. 대관령 지역은 동쪽은 경사가 급하고 서쪽은 완만하면서 펑퍼짐하다. 겨울에는 가장 춥고 눈과 바람이 많다. 예전에는 악조건이었던 이런 요소들이 지금은 이 지역을 먹여 살리는 관광자원이 되고 있다.

대관령은 ‘바람의 나라’다. 대관령 정상에 서면 몸이 날아갈 듯한 강풍을 경험하게 된다. 2006년 10월 완공된 대관령 풍력발전단지는 국내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언덕을 따라 도열한 거대한 바람개비는 광활한 목초지와 어울려 여행객을 불러모은다.

대관령의 한쪽 품을 차지하는 곳이 강원도 산속의 오지 마을인 ‘의야지 바람 마을’이다. 삼양목장과 하늘목장의 길섶 해발 800m에 위치해 있다. 2009년 정보화마을로 지정돼 농특산물 전자상거래 및 농촌체험을 운영해 오고 있다. 지난해 2월 KT의 사회공헌 사업인 기가스토리 프로젝트를 유치하며 IT마을로 변모 중이다.

이 오지 마을에 최근 5G 바람이 불고 있다. 지난해 12월 문을 연 IT 관광안내소 ‘꽃밭양지 카페’에는 5세대(5G) 이동통신 네트워크와 증강현실(AR), 홀로그램 등 첨단 정보통신기술(ICT)을 체험해 볼 수 있다. 마을에는 ICT 유해동물 퇴치 솔루션 등이 적용돼 멧돼지 등으로부터 농작물 피해를 막아내고, 주민 편의를 위한 무인택배 시스템까지 설치, 운영 중이어서 관광객들에게 새로운 체험과 즐거움을 주는 명소로 부상하고 있다.

대관령 칼바람은 이 지역 특산물인 황태 생산에 중요한 요소다. 명태를 잡아 겨울철에 눈을 맞히며 찬바람에 건조하면 황태가 된다. 겨우내 눈과 바람, 추위를 견디며 황금빛 변신을 꿈꾼다. 평창은 황태의 고장이다. 평창군 대관령면 횡계리 일대는 인제군 용대리와 함께 우리나라의 대표적 황태덕장으로 꼽힌다.

지난해 말에는 평창의 바람 덕분에 새로운 바람이 일었다. ‘평창 롱패딩’ 돌풍이다. ‘구스롱다운 점퍼’인 이 제품은 시중 거위털 패딩의 절반 가격에 보온성도 뛰어나 이른바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가 높은 점이 세간의 입소문을 탔다. 온라인 판매에서는 즉시 매진되고, 백화점 판매장에는 사람들이 몰려들어 아수라장을 벌이는 통에 경찰이 출동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구매자들 대부분은 싸서 산다는 반응이었지만 평창 동계올림픽과 관련한 히트 상품이었다.

평창의 바람이 항상 좋게만 작용하지는 않는가 보다. 평창 동계올림픽 경기에서 더욱 그렇다. 강풍이 주요 변수로 떠올랐다. 경기가 잇달아 연기됐을 뿐 아니라 경기장 밖에서도 관람객과 관광객들의 발목을 잡았다. 지난 12일 사방팔방에서 매섭게 몰아치는 바람 때문에 용평 알파인경기장에서 열릴 예정이던 알파인스키 여자 대회전 경기가 연기됐다. 경기장이 골짜기에 위치해 있어 바람이 심하게 불면 몸이 흔들릴 정도였다고 한다. 코스에 설치된 곤돌라와 리프트도 흔들거렸다고 전해졌다. 앞서 11일에도 최대 초속 20m의 강한 바람에 정선 알파인경기장에서 열릴 예정이던 남자 활강 경기는 15일로 미뤄졌다.

평창에 돌풍도 불고 있다. 김민석이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1500m에서 깜짝 동메달을 획득하고, 재미교포 클로이 김은 스노보드 여자 하프파이프에서 최연소 우승을 차지하는 등 한국 선수는 물론 한국계 선수들의 낭보가 잇따랐다. 설 연휴에는 태극전사들의 황금빛 레이스가 기대된다. 남은 올림픽 기간 평창의 ‘신바람’이 쭉 이어지기를.

남호철 여행선임기자 hcna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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