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민태원] 암 경험자 160만 시대 명암 기사의 사진
1990년대만 하더라도 암은 불치의 병이었다. 암은 곧 죽음을 의미했다. 현직 의사인 한 지인은 암이라는 사실을 알리는 일이 자신의 본분임에도 환자에게 사형선고를 내리는 것과 같아서 늘 어렵고 두려웠다는 얘기를 들려준 적 있다. 언론에서 암 환자를 다룰 때도 ‘사형 선고’는 단골 단어였다. 당시 전체 암 환자의 5년 생존율이 겨우 40%대였으니 그럴 만도 했다.

지난해 말 발표된 2015년 중앙암등록통계를 보면 암 환자 5년 생존율은 70%를 넘었다. 25년 만에 생존율이 30% 포인트 점프했다. 암 환자 10명 가운데 7명이 완치되고 있다. 췌장암 등 몇몇 치명적인 암을 빼고 이제 암은 완치 가능한 병이 됐다.

지금은 언론에서 사형 선고라는 단어가 거의 사라졌다.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다. 암 경험자는 161만명에 달한다. 국민 31명 가운데 1명이 암 치료 중이거나 치료 후 살고 있다는 얘기다. 65세 이상은 10명 가운데 1명이 암 경험자다. 한때 완치된 환자를 ‘암 생존자’라고 불렀으나 이제는 ‘암 경험자’로 부른다. 암은 위험하지만 일찍 발견하면 완치될 수 있고 나이 들면 죽기 전에 한번쯤은 암을 겪기 때문에 재난이나 전쟁에서 살아남은 생존자에게 쓰는 용어를 환자에게 적용하지 말자는 전문가 의견이 반영된 것이다.

암을 조기에 찾아내 치료하고 암 환자를 5년 이상 살리는 기술은 우리나라가 미국 캐나다 일본보다 뛰어나다. 4차 산업혁명의 핵심 키워드 중 하나인 정밀의료와 맞춤형 의료가 본격화되면 암 생존율은 더 높아지고 암 경험자 수도 급속히 늘어날 것이다. 앞으로 암 경험자 관리는 우리의 당면 숙제일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암 완치 후 환자 관리와 지원은 전무했다. 그간 정부의 암 정책은 조기 발견과 치료를 통해 5년 생존율을 높이는 데 집중해 왔고 사후 관리에는 손을 놓다시피 했다. 정부의 암 경험자 지원(건강보험 본인부담 5%)은 5년이 지나면 뚝 끊긴다. 암 투병으로 직업까지 잃었다면 경제적 어려움은 더해질 수 있다. 암 경험자의 건강관리에 빨간불이 켜진 징후도 곳곳에서 보인다. 암 경험자는 늘 재발과 전이, 2차암 발생의 두려움을 안고 산다. 치료 후 불안과 우울 자살생각 등 스트레스도 상당하다.

물론 철저한 자기 관리로 암을 훌륭히 이겨낸 이들도 없지 않지만 암 경험자의 상당수가 암 치료 후 술을 마시거나 담배를 피우는 것으로 조사됐다. 암 경험자 3명 가운데 1명은 최근 2년간 단 한 번도 암 검진을 받지 않았다는 연구 보고도 있다.

암 경험자 관리를 위해 정부도 뒤늦게 나서고는 있다. 지난해 7월부터 국립암센터와 6개 지역암센터에서 암 경험자 통합지지 시범사업을 시작했다. 국회와 함께 이를 뒷받침할 암 관리법 개정도 진행 중이지만 발걸음이 더디다. 특히 효율적인 관리 모델과 지원 방안에 대한 고민이 더 필요해 보인다. 앞으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암 경험자를 몇 개 지역 암센터에 직접 오게 해 관리하는 게 가능할까.

그런 측면에서 대만이나 싱가포르, 미국 일부 주에서 시행하고 있는 암 경험자 원격 돌봄(tele-care) 시스템 도입을 제안한다. 암 경험자들은 지역 암센터나 일선 병원을 매번 찾기 힘들다. 평소에는 컴퓨터나 태블릿PC, 스마트폰 등 통신기기를 통해 다니던 병원 의료진으로부터 원격으로 암 교육을 받거나 건강관리 서비스를 받는 것이다. 시스템에 암 환자에게 필요한 암 예방 정보나 동영상 자료, 암 극복 경험담 등을 탑재해 환자는 어느 때고 들어가서 원하는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몇 년 전 취재차 찾았던 대만의 경우 대학병원 등 대부분 의료기관이 IT기술을 활용해 원격 모니터링 인프라를 구축해 놓고 집에 머무는 암 환자를 돌보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시범사업을 통해 유효성과 비용 타당성을 검증하고 우리나라 실정에 맞는 모델을 개발할 필요가 있겠다.

민태원 사회부 차장 twm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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