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 하늘·쪽빛 호수·푸른 소나무… 한 폭의 풍경화 기사의 사진
충북 제천의 월악산을 찾은 등산객이 하봉 아래 전망대에서 충주호 방면으로 시원하게 펼쳐진 절경을 내려다보고 있다. 하늘과 물, 바위가 조화롭게 어우러져 경이로움을 자아낸다. 반대편 하봉, 중봉, 영봉으로 이어지는 바위능선은 굵직하고 기세등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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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제천의 월악산(月岳山)은 남한강의 호위를 받고 험준한 백두대간을 끼고 있다. 강과 산맥으로 이뤄진 천혜의 지형 때문에 고대부터 주변 국가들의 각축장이었다. 삼국시대 고구려, 백제, 신라의 치열한 패권 다툼이 한강수계에서 이뤄졌다. 그 중심에 중원(中原)이 있었다.

후백제 견훤은 이곳에 궁궐을 지으려 했으나 결국 그 꿈을 이루지 못했다. 몽골 침입 때 월악산 일대는 치열한 격전지였다. 동학농민혁명 때 전봉준의 스승 서장옥은 관군에 패퇴한 뒤 월악산에 숨어들었다. 광복 후 빨치산 마지막 잔당들이 최후를 마친 곳이기도 하다. 산 주변엔 많은 역사적 상흔과 전설이 서려 있다.

충북과 경북의 4개 시·군에 걸쳐 있는 월악산은 최고봉 영봉(靈峰·1094m)을 비롯 150여 개의 기암단애가 비경을 이루고 있다. 한반도에서 백두산과 함께 최고봉에 ‘신비스러운 기운’을 뜻하는 영봉이란 이름을 두고 있다.

월악산이란 이름은 ‘영봉에 걸린 달’에서 생겨났다고 전한다. 휘영청 밝은 ‘달’과 어우러진 ‘바위’는 음기(陰氣) 곧 여성을 상징하기도 한다. 월악산은 마치 우리네 어머니들처럼 역사의 슬픔을 보듬고 앉아 있다. 중부지역의 한복판에서 높이 솟아 수천 년 역사를 내려다본 산이다.

그 산을 오르기 위해 제천시 덕산면 수산리를 들머리로 정했다. 일반적으로 월악산 산행은 덕주골에서 출발해 원점회귀하는 경우가 많지만 한적한 산길과 탁 트인 충주호 전망을 함께 할 요량이라면 이곳이 안성맞춤이다.

충북 충주를 지나 36번 국도를 타고 충주호 푸른 물결을 보면서 월악산 자락으로 들어간다. 멀리서 보면 영봉과 중봉, 하봉의 자태가 마치 누워 있는 여인의 모습을 닮았다. 탄지삼거리에서 직진해 3.5㎞쯤 가면 수산교가 나온다. 다리를 건너면 수산리다.

이곳에서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2㎞ 남짓 오르면 보덕굴이 있다. 사람 키보다 큰 입을 쫙 벌린 자연동굴이다. 이곳에 기이하고 신비한 현상이 발길을 이끈다. 동굴 입구는 반달 혹은 눈썹 모양으로 보인다. 내부에 들어서면 넓은 공간이 나타난다. 입구부터 경이로운 역(逆)고드름이 무리 지어 위로 솟아 있다. 한자로 승빙(乘氷)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몇 군데 없는 드물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동굴 위에서 떨어지는 낙숫물이 지면에 닿아 얼고 얼은 기둥 위에 계속 떨어져 석순처럼 자라는 것이다. 길이는 5∼30㎝ 등으로 다양하고, 모양과 크기도 가지각색이다. 매년 12월부터 이듬해 3월 초까지 나타난다고 한다.

보덕굴을 나서 ‘영봉 탐방로’ 이정표를 따라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된다. 영봉까지는 약 4㎞다. 초반부터 시작되는 급경사 길은 호흡을 가쁘게 하고 계단길은 무릎을 압박한다. ‘악(岳)’자 돌림 5형제의 맏형인 만큼 각오를 했지만 숨이 턱까지 차오른다. 악산(岳山)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한다. 하봉 갈림길에 이르면 과거 하봉을 우회해 가던 길 대신 곧바로 오르는 계단길이 맞이한다. 올라서면 하봉 아래 전망대에 다다른다. 조망이 시원하게 트인 곳에 나무로 데크를 만들어 놓았다. 데크 가운데 소나무가 운치를 더한다. 이곳에서 내려다보는 충주호 풍경이 압권이다. 파란 하늘을 이고 쪽빛 물감을 풀어놓은 듯한 수면이 평화로운 한 폭의 풍경화를 그려낸다. 고개를 뒤로 돌리면 하늘에 높게 걸린 우람한 암봉이 시선을 잡아끈다. 중봉에 이어 정상인 영봉이 손에 잡힐 듯 가깝다. 하늘과 물, 바위, 숲의 조화가 경이롭다.

하봉으로 이어지는 길은 데크 구름다리를 건넌다. 내리막과 오르막으로 된 길 협곡을 쉽게 이어준다. 중봉으로 오르는 길에 돌기둥 사이에 걸린 바위가 석문을 형성하며 볼거리를 내어준다. 중봉 정상 암릉에는 데크길이 설치돼 있다.

다시 내리막과 오르막을 거쳐 영봉 아래에 이르면 마지막 급경사에 설치된 계단이 하늘 위로 아득하다. 마지막 힘을 모아 정상인 영봉에 우뚝 선다. 영봉은 암벽 높이가 150m, 둘레가 4㎞나 되는 거대한 암반이다. 봉우리 높이만 150m. 하늘을 찌를 듯 기운차게 솟아있는 봉우리는 ‘한국의 마터호른’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사방에서 보이는 모습이 각각 달라 ‘네 개의 얼굴을 가진 봉우리’로 불린다. 북서쪽에서 보면 쫑긋한 토끼 귀의 형상이, 동쪽에서는 쇠뿔 모습이, 남쪽에서 보면 거대한 히말라야로 나타난다고 한다.

정상에서 보면 충주호에 영봉, 중봉, 하봉이 더해지면서 더욱 풍성한 경치가 펼쳐진다. 호수 주변으로 금수산과 가은산, 구담봉과 옥순봉이 줄을 선다. 반대편으로 눈을 돌리면 조령산, 포암산, 금수산 같은 중부권 명산들이 사방에서 제모습을 드러낸다. 그 뒤로 백두대간 산줄기가 파도처럼 물결친다. 동쪽으로 소백산이 시야에 잡히고 서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두 개의 뿔이 솟은 듯한 주흘산이 우뚝하다. 산들이 살아서 꿈틀대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제부터 하산길. 덕주골 쪽으로 길을 잡는다. 약 5㎞, 4시간쯤 걸린다. 하산 길에서 비로소 영봉의 위용이 제대로 드러난다. 등산로는 수직절벽을 피해 암반을 휘휘 돈다. 암벽에 설치된 철계단은 현기증을 일으키게 한다.

1시간쯤 내려서면 960봉이다. 잔가지나 능선의 방해를 받지 않아 영봉이 가장 또렷이 조망된다. 하늘을 향해 솟구친 기암이 장엄하다. 여기서부터 덕주골로 내려서는 길은 가파르다. 길옆으로는 웅장한 화강암이 길게 이어진다. 바위틈에는 수백 년의 소나무가 아슬아슬하게 붙어 있다.

덕주골에는 신라 마지막 왕자인 마의태자와 누이 덕주공주의 사연이 전한다. 신라의 국운이 다한 935년 신라의 마지막 왕인 경순왕은 신라의 천년 사직을 순순히 고려 왕건에게 넘긴다. 경순왕의 아들인 마의태자는 끝까지 저항하자고 주장했지만 대세를 뒤집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마의태자는 금강산으로 향한다. 하늘재에 들어선 일행을 고려의 호족들이 막아섰다. 신라재건운동을 벌일지도 모른다는 염려 때문이었다. 결국 마의태자는 미륵사에, 덕주공주는 덕주사에 볼모로 갇힌다. 마지막 덕주골 입구에 마의태자가 쌓았다는 덕주산성이 남아 있다. 고려 때는 항몽지, 임진왜란 때는 왜군을 막아낸 요충지다. 태자와 공주의 망국한이 투영된다(월악산국립공원사무소 043-653-3250).

월악산(제천)=글·사진 남호철 여행선임기자 hcna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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