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송세영] 이윤택법이 필요하다 기사의 사진
성폭력 가해자로 지목된 연출가 이윤택씨가 19일 기자회견을 갖고 “제 죄에 대해 법적 책임을 포함해 그 어떤 벌도 달게 받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그가 저지른 성범죄들에 법적 책임을 묻고 형사처벌을 하는 일은 현행법상 쉽지 않다. 이날 기자회견 자체가 치밀하게 연출된 ‘쇼’였다는 내부고발이 사실이라면 이씨도 변호사 자문 등을 통해 이를 알았을 가능성이 높다. 성범죄자 처벌과 피해자 보호에 있어 우리 법은 아직 너무 멀리 있다.

성범죄를 친고죄로 규정한 법조항이 폐지된 것은 2013년 6월이다. 친고죄는 피해자의 고소가 있어야만 처벌이 가능하다. 신고할 수 있는 기간도 범인을 알게 된 날로부터 6개월 이내로 제한됐다. 친고죄 폐지 이전에 성범죄를 당했는데 기간 내에 신고하지 못했다면 고소를 한다 해도 검찰은 불기소 처분을 한다. 민사소송을 통해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는 있지만 형사 유죄 판결 없이 당사자가 피해 사실을 입증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이씨에게 법적 책임을 물으려면 2013년 6월 이후 성폭력 피해를 입은 이들이 고소 고발에 나서야 한다. 이씨는 기자회견에서 자신의 성범죄가 18년간 계속돼 왔다고 시인했다. 피해자를 몇 명으로 파악하고 있느냐는 질문에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고 답했다. 이씨 스스로 2013년 6월 이후에도 ‘관습처럼’ 성범죄를 계속 저질렀다고 자백한 셈이다. 이 시기 피해자들이 고소 고발에 동참하면 이씨의 형사처벌은 충분히 가능하다. 그래도 그가 저지른 범죄에 비하면 빙산의 일각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 피해자가 얼마나 고소 고발에 동참할지는 미지수다. 이씨의 범행 양태로 볼 때 이들은 사회 경험이 많지 않고 상대적으로 젊은 연극계 입문생일 가능성이 높다. 아직 혼란스러운 감정에 빠져 있거나 자신의 잘못이 아닌지 자책하고 있을 수도 있다. 나만 가만히 있으면 없었던 일처럼 되지 않을까 하는 위험한 기대를 갖고 있을 수도 있다. 무엇보다 2차 피해에 대한 두려움이 ‘미투(나도 당했다)’를 주저하게 만들 수 있다.

이씨 사건에서 드러났듯 우리 법은 성범죄의 방조와 묵인, 2차 피해를 막고 2차 가해자를 처벌하는 데 허술하다. 성범죄 피해자들은 피해 사실을 알리는 순간부터 신상정보 공개, 악성 루머 유포, 회유와 협박, 조직 내 ‘왕따’, 각종 불이익 등 2차 피해에 노출된다.

이씨 사건의 피해자들도 그가 이끌던 연희단거리패 내에 성범죄를 부추기거나 묵인한 이들이 존재했다고 증언하고 있다. 성폭력 사실을 은폐하려는 시도와 회유, 협박도 여러 차례 있었다고 한다. 교주에게 성상납을 하도록 부추기고 강요하는 사이비 종교집단의 행태와 여러모로 유사하다. 연희단거리패는 해체 선언으로 책임을 다한 게 아니다. 그동안 보고 듣고 저질렀던 불법행위들을 고백해 진상규명에 협조하고 민형사상 책임도 져야 한다.

이씨 사건으로 확대된 미투 운동이 일회성 이벤트로 끝나지 않으려면 성폭력 고발을 가로막는 2차 피해를 예방하고 가담자를 처벌할 수 있는 ‘이윤택법’을 만들어야 한다. 현행법에 대한 적극적 해석을 통해 가능할 수도 있지만 명시적 법규정을 따로 두는 것에 비해 효과가 적다.

이윤택법의 핵심은 성범죄를 방조하거나 묵인한 이들도 공범으로 처벌하는 게 돼야 한다. 피해자를 회유, 협박하거나 악성 루머를 퍼트리는 이들도 마찬가지로 의율하고 가해자의 근거 없는 맞고소는 가중 처벌해야 한다. 나아가 친고죄 폐지 이전의 성범죄에 대해서도 어떤 형태로든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피해자들은 평생 씻기 힘든 정신적·육체적 상처를 안고 사는데 가해자들은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는 불의한 현실을 바로잡아야 한다. 기존 법조문 개정만으로 힘들다면 특별법을 만들어서라도 길을 찾아야 한다. 소급 적용을 놓고 위헌 시비가 있다면 그 헌법적 근거를 개헌 때 확보하는 방법도 있다.

송세영 사회부장 sysoh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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