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적 대응·대처 방안 논의
“호기심·자극적 보도로
용기 낸 폭로자 다시 상처”
인권위, 실태조사 추진 중

연극계 성폭력을 폭로한 피해자들과 연극인이 한자리에 모였다. ‘미투(#MeToo)’ 운동을 지지하는 이들은 정기적으로 모여 피해자들의 법적 대응과 공연계의 변화를 함께 모색하기로 했다. “피해자 신원 찾기와 폭로 글의 자극적 소비를 멈춰 달라”는 호소도 나왔다.

21일 오후 10시 서울 종로구 대학로에서 미투에 동참한 이들과 연극인이 함께 법적 대응과 대처 방안을 논의하는 모임이 열렸다. 모임을 주도한 극단 고래의 이해성 대표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피해자들의 상처를 치유할 방법을 논의하고, 다 함께 학습해서 앞으로 또 다른 피해자가 나오지 않게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첫 모임은 피해자들이 직접 참여하는 만큼 일반인과 언론에는 공개하지 않았다. 이 자리에는 변호사도 참석해 법적 대응책 마련을 도운 것으로 전해졌다. 주최 측은 “피해자들의 발언과 위치를 사적 영역으로 국한시키지 말고, 내가 가해를 방관하지 않았는지, 가해자였던 적은 없는지 자신을 돌아보라”며 “이제라도 공적인 변화를 이끌어 달라”고 제안했다. 윤지영 건국대 몸문화연구소 교수는 “(이러한 연대는) 연극계 성폭력이 개인들의 불운이 아니라 문화·예술계 전체를 아우르는 구조적 폭력이라는 점을 보여줄 수 있다”고 기대했다.

연극계에서는 미투 운동 이후 피해자 추적이나 자극적 보도가 2차 피해를 불러올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윤택 전 연희단거리패 예술감독의 성폭행 의혹을 고발했던 김보리(가명)씨는 온라인 커뮤니티에 글을 올려 “(가해자인) 이윤택씨나 하용부씨의 이름보다 피해자들의 이름과 나이, 사진 등을 무차별적으로 퍼트리고 있는 상황은 또 다른 폭력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 전 예술감독의 성폭력 문제를 처음 공론화시킨 김수희 극단 미인 대표도 페이스북에 “피해자 찾기를 당장 멈춰 달라. 용기 내서 폭로한 당사자가 다시 상처받고 있다”고 적었다.

전문가들은 피해 정황 진술이 성폭력 규명에 필요하지만, 그 자체가 중심이 돼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불특정 다수를 향한 폭로라는 형식과 사법 절차에 따른 성폭력 고소·고발을 분리해야 한다는 조언도 나왔다. 윤 교수는 “구조적으로 뿌리내린 성폭력 문화를 파헤치기 위해서는 폭로가 가장 효과적으로 이 사회를 흔들 수 있는 방법이었던 것”이라며 “사법 시스템으로 넘어가면 신원 확인이 필요하지만 그 이전의 영역, 즉 폭로를 할 때는 본인이 원한다면 익명성이 보장돼야 한다”고 말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문화·예술계 미투 운동과 관련해 실태조사를 추진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임주언 기자 e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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