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시론-송용원] 이파리 하나만 그려도 된다 기사의 사진
이 땅에서 기업가로 살아간다는 존재이유는 무엇일까? 역사가 폴 존슨에 따르면 목수로서 가족과 이웃을 위해 조그만 비즈니스를 하셨던 예수님의 일을 모범으로 삼았던 기독교 수도원 공동체에서 기업(企業, company)의 본래 의미가 꽃을 피웠다. ‘Cum Pane!’. 라틴어로 ‘더불어 빵을 나눈다’는 뜻이다. 기업은 가만히 그 역사를 들여다보면 서로가 자원을 교환하는 일종의 선물 공동체를 지향하는 방식으로 인류사회에 존재해 왔다. 이는 본디 모든 피조물이 각자 은사를 서로 선물로 교환하는 유기적 공동체로 세상을 디자인하신 하나님의 오리지널 플랜에 어울린다.

그런데 빵을 나누는 기업이란 죄 많은 세상에 잠시 생겨났다 장차는 흔적조차 없어질 어떤 것에 불과한 것일까? ‘마침내 드러날 하나님 나라’에서 신학자 톰 라이트는 성경의 새 하늘과 새 땅은 지금 세상보다 부패도, 죽음도, 타락도 없다는 의미에서 영적이면서도 더 물질적이라고 갈파했다.

그렇다면 기업 또한 하나님 나라에서 더욱 새롭게 갱신되고 재구성될 소중한 피조물에 포함될 수 있지 않겠는가.

‘반지의 제왕’의 작가 J R R 톨킨의 단편소설 ‘니글의 이파리’에는 아름다운 생명나무 한 그루를 잘 그리고 싶었던 한 남자의 사연이 나온다. 평생 노력했지만 이웃을 돕는 따스한 마음과 엄정한 노력을 하는 성품 탓에 이파리 한 장만 겨우 그리고는 일생을 마친 이야기다. 주위를 돌아보면 니글과 비슷한 형편에 놓인 직장인이 대부분이다. 자아실현의 인본주의 모델에서 볼 때 얼마나 아쉽고 슬픈 결말인가.

하지만 톨킨은 니글이 올라간 천국에 펼쳐진 커다란 나무 하나를 묘사한다. 그런데 영원한 그 나라에서 완성된 니글의 생명나무는 이 땅에서처럼 하나의 그림이 아니라 바람에 나부끼는 실제 나무였다. 이 땅에서 성취하길 꿈꾸나 그린 것이라곤 겨우 이파리 한 장뿐인 인간의 짧은 일생에 다가오는 (기독교적) 소망이란 무엇일까? 하나님은 그분의 자녀들이 이 땅에서 충성한 모든 일을 그분 마음에 모두 업로드(upload)해 놓으셨다가, 당신의 나라가 임하실 때에 고스란히 다운로드(download)하신다는 약속이다.

땅은 있어도 하늘은 없다 하고, 오늘은 있어도 내일은 없다 하면서, 자기만의 스토리를 써가는 인본주의 기업가 모델에서 니글의 이파리를 바라보면 그저 조소할지 모르겠다. 그들에겐 거리끼는 것이요 또 어리석은 것이니!

하지만 하나님의 더 큰 이야기 속에서 자신의 스토리를 재발견한 크리스천 기업가와 직장인들에게 일터란 더 이상 자기만의 성공 스토리에 몰두하는 장소가 아니다. 하나님은 이 땅에서 맡기신 소명을 새 하늘과 새 땅에서는 소멸되게 하는 분이 아니시다. 오히려 영화롭게 완성하실 좋으신 주님이시다. 현재 이 땅의 기업에서 경영하고 노동했던 모든 능력과 경험은 새 창조세계에서도 중요한 자산으로 갱신될 것이라는 관점은 기독교 종말론의 경세적(economic) 확신에서 나온다.

그러니 기독교 모델을 따르는 기업가와 직장인들의 영성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이 땅에서 섣부르게 하늘의 생명나무를 완벽하게 그려내겠다고 오판하는 태도일 수 있을까? 어차피 성경적 경영이란 현실적이지도 유용하지도 못하다고 푸념하며 이파리 한 장조차 그리지 않고, 물감과 붓을 수건에 꽁꽁 싸서 땅에 묻어두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일터를 오가는 풍경일까? 아니다. 주님이 부탁하신 나만의 사명을 분별하고 특정한 달란트를 선용하여 니글의 이파리 한 장을 잘 그려내는 것이 바로 소명일 것이다. 2018년 새로운 한 해에 그려야 할 나만의 이파리는 무엇일까? 비록 작아도 하늘과 땅이 그 안에 응축된 잎새 하나!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나팔소리에 흔들리는 이파리 하나! 지금 그대는 그러한 이파리를 그리기 시작했는가?

송용원 은혜와선물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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