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청년] “장애인이 주인공인 영화 만들고 싶어요”

장애 이기고 장애인 돕는 김종민 영화감독

[예수청년] “장애인이 주인공인 영화 만들고 싶어요” 기사의 사진
김종민 감독이 21일 서울 용산구 한강대로의 한 카페에서 자신의 영화관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신현가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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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 새 학년이 될 때마다 주먹다짐은 통과의례였다. 남들과 다른 모습을 놀림거리로 삼는 동급생이 꼭 한두 명씩 있었고, 그들의 조롱을 참기 어려웠다.

3살 때 계단에서 굴러 떨어지며 머리를 심하게 다쳤다. 뇌병변으로 인한 편마비가 왔다. 왼쪽 다리와 손에 장애가 생겼다. 여름에도 긴 소매 옷을 입으며 최대한 숨겼다. 친구들이 축구 등을 할 때 잘 끼워주지 않았다. 남몰래 열심히 연습을 했지만 한계가 있었다.

도서관을 찾아 책을 읽는 것이 습관이 됐다. 철학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읽었다. 그러다 영화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아버지가 비디오플레이어를 사오고 나서부터다. “하루에 3∼4편씩 영화를 봤던 거 같아요. 현실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때론 멋지고 슬픈 이야기가 눈앞에 구현되는 게 제 가슴을 뛰게 만들더군요.”

21일 서울 용산구 한강대로의 한 카페에서 만난 김종민(38) 감독은 ‘영화’와의 첫 만남을 회고하며 말했다.

“영화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궁금해 지역 문화센터 등 영화 관련 강의를 하는 곳이면 어디든 찾아 나서 수업을 들었습니다. 그렇다고 언감생심 감독이 되겠다는 생각을 하진 않았어요. 그저 영화가 좋았습니다.”

진로를 앞두고 고민에 빠졌다. 부모님과 지인들은 안정적인 공무원이 될 것을 추천했다. 하지만 마음속에서는 ‘영화와 관련된 일을 하고 싶다’는 욕구가 끊이지 않았다.

영화계에 아무런 인맥도 없었고, 영화관련 전공을 하지도 않았기에 밑바닥부터 부딪히기로 마음먹었다. 인터넷의 영화 스태프 구인구직 커뮤니티를 통해 사람을 뽑는 곳이 있으면 무작정 지원했다. 자기소개서에 장애가 있음을 솔직히 밝혔고 남들보다 더 열심히 하겠다는 각오도 담았다. 기적적으로 두 곳에서 연락이 왔고 그중 ‘여선생 대 여제자’(2004·장규성 감독)의 제작부 막내로 일하게 됐다. 이후 그는 4∼5편의 상업영화와 여러 편의 독립영화에서 연출부 스태프, PD 등을 거쳤다. 영화일만으론 생계를 잇기 어려웠다. 음식 배달, 웨딩홀 촬영 등 갖가지 아르바이트를 했다. 하지만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러다 마침내 2010년 감독으로 첫 작품을 찍었다. ‘다리 놓기’라는 제목의 영화는 청각장애인 여성이 시각장애인 남성을 만나면서 빚어지는 에피소드를 다룬 작품이다.

김 감독이 삶을 살아내도록 지탱해 준 또 다른 축은 신앙이다. 모태신앙으로 교회는 그에게 익숙한 곳이었지만 신앙이 견고해지기까지 치열한 과정을 거쳤다.

“교회에서 사람들에게 실망한 것 때문에 힘든 것도 있었지만 하나님께 왜 내가 장애를 갖게 됐는지에 대한 원망을 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삶의 고비와 마주할 때마다 하나님 앞에 엎드렸고, 하나님은 제게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서울 삼일교회(송태근 목사)에 출석 중인 그는 특히 선교를 통해 하나님의 은혜를 많이 경험했다고 했다. 김 감독은 대만 등에 현재까지 수십 번 단기선교를 다녀왔다. “하나님이 부족한 저를 통해서도 당신의 사랑을 전하게 하심을 느끼면서 감사가 절로 넘쳤습니다.”

김 감독은 자신의 재능을 이웃과 나누는 일도 하고 있다. 초·중·고교생에게 UCC 제작과 영화에 대한 교육을 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경기도 용인시의 ‘우리동네평생교육학교’에서 중증 장애인들을 대상으로 영화교육을 하며 단편영화를 제작했다. 집이 있는 인천에서 대중교통을 여러 번 갈아타고 2시간30분이 걸려 도착하는 용인의 학교까지 매주 찾아갔다. 김 감독의 지도 아래 시나리오 작성과 연기·촬영·편집을 수강생들이 해냈고, 결국 뇌병변을 가진 장애인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한편을 제작했다. 제작에 드는 비용은 주변의 도움과 김 감독의 자비로 충당했다. 김 감독은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해 11월 교육부와 국가평생교육진흥원이 주최하는 대한민국 평생학습대상에서 국무총리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김 감독은 현재 장편영화 제작을 꿈꾸고 있다. 앞서 연출한 단편영화들처럼 장애인이 주인공인 영화다. 건강하고 매력적이던 남성이 어느 날 갑자기 장애를 얻고 낙심했다가 한 여성을 통해 용기를 얻는 이야기, 라이따이한 여성과 한국 농촌의 장애인 남성의 이야기 등 이미 두 편의 시나리오를 썼다.

그러나 장애인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가 세간의 관심을, 좀 더 현실적으로 말하면 투자자나 제작사의 관심을 얻기 어려운 현실이다. 최근 흥행한 영화 ‘그것만이 내 세상’(2018·최성현 감독)이 제작될 수 있었던 것은 이병헌과 같은 인지도 높은 배우가 출연을 결정했기 때문이라는 의견이 영화계에서는 지배적이다.

“주인공이 장애인인 이야기는 배우들의 손에 닿기도 전에 거절당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장애를 가진 이들도 똑같이 사랑을 하고 아파하고, 공감을 합니다. 그들의 이야기도 충분히 재미있고 아름답습니다. 꼭 영화로 만들고 싶습니다.”

이사야 기자 Isaiah@kmib.co.kr

사진=신현가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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