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김영석] 여권 지수 기사의 사진
여권(旅券)은 해외여행을 하는 사람을 위해 정부가 발행하는 공식 신분증명서다. 여권의 역사는 꽤 오래됐다. 기원전 450년경 페르시아 제국 시기 신하였던 느헤미야가 유대로 여행하겠다고 청하자 아르타세르세스 1세가 강을 넘어서도 효력을 발휘하는 문서를 작성해 주었다는 기록이 있다. 중세 아랍 제국에선 세금 납부 영수증인 ‘바라아’가 여권을 대신했다. 아랍 제국에선 시민만이 세금을 냈기 때문이다.

근대적 개념의 여권 제도를 처음 시행한 이는 영국 왕가의 헨리 5세다. 19세기 중반 이후 유럽에서 기차여행이 본격화되자 국가마다 다른 여권법은 많은 문제점을 노출했다. 1920년 국제연맹이 발급 표준안을 만들면서 여권은 세계여행의 필수품이 됐다. 우리나라는 1949년 발급 업무를 시작했다. 요즘 우리나라 여권이 아주 비싼 가격에 불법 거래되고 있다고 한다. 그만큼 우리 여권의 힘이 세다는 의미다.

여권의 힘을 계산한 지수가 있다. 여권 지수(The Passport Index)다. 글로벌금융자문회사인 아톤 캐피털이 개발했다. 전 세계 199개국을 대상으로 비자 없이 또는 도착 직후 비자를 받을 수 있는 국가 수를 집계한 결과다. 처음에는 독일을 비롯한 유럽 국가들이 상위권을 차지했다. 아시아에선 싱가포르가 항상 최상위권에 포진했다.

최근 발표된 여권 지수에서 우리나라가 162점으로 싱가포르와 함께 공동 선두를 차지했다. 독일과 일본이 2위 그룹을 형성했다. 한때 세계의 프리패스로 통했던 미국은 캐나다, 스위스, 아일랜드와 함께 5위 그룹에 머물렀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반이민 정책이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다.

북한은 87위 그룹에 랭크됐다. 여권 지수는 41점에 불과했다. 2016년 싱가포르와 몽골, 지난해엔 말레이시아와 에콰도르가 북한을 비자면제 대상국에서 제외시킨 바 있다. 북한보다 순위가 낮은 나라는 시리아와 이라크 등 14개국에 불과하다. 핵·미사일 도발로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가 강화되면서 고립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북한이 평창 동계올림픽 이후 추가 도발에 나선다면 상황은 더욱 악화될 수 있다. 국제사회와의 교류 없이 살아남을 수 있는 나라는 지구상에 없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김영석 논설위원

삽화=이영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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