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 건강] ‘경증 치매’도 돌봄의 길 열렸다… 확대된 ‘장기요양’ 기사의 사진
지난 23일 경기도 가평군 재가노인복지센터에서 장기요양 3∼5등급 노인들이 풍선 볼을 이용한 레크리에이션을 하고 있다. 올해 처음 인지지원 등급을 받은 경증 치매 노인(왼쪽)이 지난달 말부터 이곳 주야간 보호 프로그램을 이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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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 양호한데 인지 기능 떨어진 경증 치매 노인에 올부터 서비스
등급 외 노인 24만4000여명 추산… 시행 2개월 만에 1408명 혜택 받아
월 한도액 15% 자기 부담하면 인지강화 프로그램 등 이용 가능
치매 5등급과 인지지원 등급 간 구별 모호한데 혜택 차이 커 논란도


경기도 하남에 사는 임모(84·여)씨는 4년 전부터 환상과 환청에 시달리는 치매 증상을 보였다. 밤에 꿈꿨던 상황을 현실과 혼동해 함께 사는 아들에게 자꾸 “내 물건을 훔쳐갔다”며 타박했다. 깜빡깜빡하는 일도 잦아졌다. 열쇠 같은 물건을 어디다 뒀는지 금방 잊거나 세탁기를 돌리고 또 돌렸다. 잠시 바깥에 나갔다가 집을 찾아오지 못한 적도 있다. 6∼7년 전 뇌경색 발병 후 이런 증상이 조금씩 나타났다.

병원 주치의는 노인성 치매 초기에 해당된다며 장기요양 등급을 신청해 보라고 권했다. 나이 들도록 결혼 안 한 아들이 홀로 노모를 모시느라 힘겨워하는 모습이 안쓰러워서였다.

하지만 그간 세 차례 등급 신청에서 모두 등급(1∼5등급)외 판정을 받았다. 치매 특별 5등급마저 인정 점수가 부족해 탈락했다. 외형상 건강하다는 게 이유였다. 2년 전 넘어져 왼쪽 엉덩이관절 수술을 받긴 했어도 집안이나 가까운 바깥나들이엔 지팡이를 짚고 거동하는 데 큰 불편이 없었다. 화장실 사용, 세수, 양치, 옷 갈아입기 같은 일상생활을 어느 정도 혼자 할 수 있다는 점도 참작됐다.

아들 전모(49)씨는 “건설 쪽 일을 하기 때문에 매일 밖에 나가 있어야 하고 지방 출장이 잦아 집에 어머니 혼자 계실 땐 걱정이 컸다”고 했다. 또 “가스불에 냄비를 올려놓고 잊어버려 태운 적이 많아 바깥에 있을 땐 늘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임씨처럼 기억력 등 인지기능이 많이 떨어졌지만 신체기능이 비교적 양호한 가벼운 증상의 치매 환자들은 그동안 장기요양 서비스의 ‘사각지대’였다.

정부가 이들 경증 치매 노인 돌봄을 확대하고 가족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올해 1월부터 장기요양 ‘인지(認知)지원 등급’을 신설했다. 임씨도 인지지원 등급을 새로 부여받고 지난달 29일부터 거주지 인근 실버 주·야간보호센터에서 낮 동안 돌봄 서비스를 받고 있다.

지난 23일 찾은 경기도 가평군 재가(在家)노인복지센터. “자, 손가락으로 풍선 볼을 꼭 쥐고 등 뒤로 돌리세요. 10번씩. 하나 둘 셋 넷…. 우리 어머니, 왜 이렇게 잘해. 이제 보니 선수셨네.”

피트니스 강사 김은자(50)씨의 구령에 맞춰 핑크색 티셔츠를 맞춰 입은 남녀 노인 10여명이 손으로 풍선 볼을 잡아 허리 뒤로 돌리려 애를 썼다. 일부 노인들은 손가락 힘이 약해 풍선 볼을 잡지 못했고 중간에 놓치는 이들도 있었다. 이어 경쾌한 음악에 맞춰 두 손으로 드럼 스틱을 치는 놀이가 시작됐다. 강사가 불러주는 숫자에 맞춰 대부분 스틱을 짝짝짝 부딪쳤지만 한두 명은 더 많이 치기도 했다. 김 강사는 “신체 감각과 기억력, 인지능력이 유지되도록 놀이 위주로 프로그램을 짰다”고 말했다.

장기요양 3∼5등급을 받은 70∼100세 노인 19명이 이곳 주·야간보호센터의 인지기능 강화 프로그램을 이용하고 있다. 이들 중에는 올해 처음 치매 인지지원 등급을 받은 전모(76·여)씨도 있다. 2015년 알츠하이머병 진단을 받았지만 신체기능 점수가 낮아 치매 5등급을 받지 못했다. 함께 사는 아들 부부는 펜션 일을 하느라 낮에 전씨를 돌보는 게 쉽지 않았다. 마땅히 갈 곳이 없는 전씨는 종일 방에 갇혀 지내거나 가끔 나와서 길거리를 배회했다.

전씨는 “나이와 생일이 잘 기억나지 않고 집 현관문 번호도 생각 안 날 때가 많다. 길을 잃어버려 지나가는 학생에게 물어 찾아 온 적도 있다. 이상해서 검사받아봤더니 치매라고 하더라”면서 “심하지는 않다는 말에 기억력을 유지하려 이곳을 다닌다. 여기 오면 즐겁다”고 했다.

주·야간보호센터에선 오전 9시30분부터 오후 5시40분까지 두뇌건강 놀이, 진흙공예, 웃음 치료, 실버건강 체조, 민요교실 등 다양한 신체·인지 강화 프로그램이 제공된다. 며느리 신모(48)씨는 “낮 동안만이라도 맘 놓고 일을 볼 수 있어 걱정을 덜고 있다”면서 “정부 지원 한도가 정해져 있어 주 3일(월·수·금)만 이용하고 있는데, 어머니가 다른 요일에도 자꾸 가고 싶어 한다. 다행히 센터에서 그냥 받아주기도 해 고맙다”고 말했다.

26일 보건복지부와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장기요양 서비스 등급 가운데 올해 새로 생긴 인지지원 등급을 받은 경증 치매 노인은 지난 20일 기준 1408명으로 파악됐다.

복지부는 지난 2년간 치매 진단을 받아 약물 치료를 하고 있지만 장기요양 등급을 신청하지 않았거나 그간 인정 점수가 부족해 등급외에 해당된 노인들을 24만4000여명으로 추산했다. 잠재적 인지지원 등급 가능자 가운데 0.6% 정도가 시행 2개월이 채 안 돼 장기요양 서비스를 받게 된 것이다.

신체기능과 인지기능 점수로 인정받는 장기요양 1∼5등급 가운데 5등급(인정 점수 51 미만∼45점)은 치매 환자들에게만 적용된다. 2014년 1만456명에서 지난해 4만2001명으로 4배 넘게 증가했다. 그동안 인정 점수가 45점 미만일 땐 5등급에서 무조건 탈락했는데 이제 이들 가벼운 치매 환자들도 신체기능과 무관하게 모두 인지지원 등급을 받을 수 있다.

인제의대 상계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이동우 교수는 “초기 치매의 경우 약물 치료와 인지강화 프로그램을 지속 병행하면 중증 치매로 진행되는 걸 훨씬 늦출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인지지원 등급자들은 주·야간보호기관(치매 전담형 포함)이 제공하는 인지강화 프로그램 등 돌봄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월 한도 51만7800원 내(하루 8시간 이상, 약 12일)에서 가능하다. 월 한도액의 15%(7만7670원)를 본인이 부담하고 나머지는 정부가 시설에 지원한다.

치매 가족 휴가제도 쓸 수 있다. 월 한도액과 관계없이 연간 6일 내에 숙식 가능한 단기보호기관에 환자 돌봄을 맡길 수 있다. 마찬가지로 하루 이용 요금(4만2810원)의 15%만 내면 된다.

일부에선 벌써 볼멘소리가 터져 나온다. 치매 환자와 가족들은 인지지원 등급의 월 한도액 제한 때문에 실제 한 달에 12일 정도밖에 서비스를 이용하지 못하는 점을 아쉬워한다. 월 한도액이 93만800원으로 거의 한 달 내내(일요일 제외 시 26일 정도) 서비스를 제공받는 치매 5등급과 차이가 너무 크다는 주장이다. 등급 인정 점수에서 차이가 날 뿐 실제론 치매 5등급과 인지지원 등급 간 구별이 모호할 때가 많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매일 치매 부모를 돌볼 여건이 안 되는 가족들 가운데 정부 미지원 기간(한 달에 약 18일)에도 돌봄 서비스를 제공받기 위해 별도 계약(본인 전액 부담 조건)을 하는 편법 사례도 나오고 있다.

접근성이 떨어지는 문제도 우선적으로 해결돼야 한다. 대부분의 주·야간보호센터는 지원금을 더 받을 수 있는 5등급 이상 등급자를 선호한다. 인지지원 등급자의 경우 정원외 10%까지 받도록 허용하고 있지만 수용되는 인원은 많지 않다.

주·야간보호센터는 전국에 2795곳에 이르지만 서울과 경기도 등 수도권, 대도시에 집중돼 지역 간 편차가 크다. 복지부는 기존 장기요양 인프라 외에 거주지역 내 노인복지관에서 인지강화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복지부 관계자는 “인지지원 등급 어르신들은 어느 정도 혼자 다닐 수 있는 분들이라 집 근처 복지관을 방문해 서비스를 받도록 하자는 것”이라며 “상반기에 노인복지관 30곳에서 시범사업을 벌인 뒤 내년에 전국 350여개 복지관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글·사진=민태원 기자 twmin@kmib.co.kr

그래픽=안지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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