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이명희] 올림픽 수상 소감 기사의 사진
1936년 베를린올림픽 마라톤 경기에 출전해 금메달을 딴 손기정은 수상 소감을 묻는 기자에게 “육체란 의지와 정신에 따라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불가능한 일을 한다”고 했다. 일제 식민지배 시절 일장기를 달고 출전해 우승했지만 그는 친구에게 보낸 엽서에서 슬프다고 했다. 금메달을 딴 후 일본에서 강제로 녹음한 것으로 보이는 우승 소감 테이프에는 “우리나라 일장기” “내 개인의 승리가 아니라 전 우리 일본 국민의 승리” 등의 표현이 나오고 누군가 옆에서 “크게 하라”고 면박을 주는 소리가 들린다.

1986년 서울에서 열린 아시아경기대회 여자 육상 800m와 1500m, 3000m에서 우승해 금메달 세 개를 목에 걸었던 임춘애는 우승 소감으로 “라면 먹으면서 운동했고 우유 마시는 친구가 부러웠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어려운 가정형편에도 열심히 훈련해 3관왕에 오른 ‘라면 소녀’의 성공신화는 많은 국민들에게 감동을 줬다. 하지만 훗날 이 이야기는 코치 부인이 끓여준 라면을 간식으로 먹었다는 얘기가 와전된 것으로 드러났다. 임춘애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체력보강을 위해서 도가니탕과 삼계탕은 물론 뱀탕까지 먹었다. 라면만 먹고 어떻게 뛰겠느냐”고 반문했다.

올림픽 무대는 가정형편이 어려운 선수들의 인생 역전 발판이 되기도 한다.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 한국 체조 역사상 첫 금메달을 딴 양학선은 “금메달을 따면 비닐하우스에 사는 부모님께 번듯한 집을 지어드리고 싶다”고 했다. 이 얘기가 전해지자 건설업체가 아파트 한 채를 내놓았고 구본무 LG그룹 회장은 5억원을 쾌척했다.

25일 막을 내린 평창 동계올림픽에 출전했던 선수들의 수상 소감은 세태 변화를 느끼게 한다. 감격에 겨워 눈물 줄줄 흘리는 모습은 옛말이다. 겸손이 미덕이란 말도 구식이다. 남자 봅슬레이 4인승에서 은메달을 딴 파일럿 원윤종은 “그동안 우리는 고생을 많이 했고 충분히 메달 받을 자격이 있다”고 당차게 말했다. 여자 스피드스케이팅 500m에서 은메달을 획득한 이상화는 SNS에 “나는 너무나 수고했고 길고 긴 여정도 잘 참아냈다”며 자신을 토닥였다. 남자 매스스타트 결승에서 이승훈을 도왔던 16세의 정재원은 “내 레이스가 도움이 돼 기쁘다. 내 도움으로 승훈이 형이 금메달을 목에 걸 수 있어 기쁘다”고 했다. 자신과의 싸움에서 최선을 다하고 당당하게 자신을 치켜세우는 이들에게서 새로운 희망을 본다.

이명희 논설위원

그래픽=이영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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