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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리 그레이엄의 삶과 신앙] 복음 전파 못잖게 자녀들 신앙전수 힘써

(下) 복음주의 거장의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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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70대 중반의 빌리 그레이엄 목사 부부가 장성한 다섯 자녀와 함께 한자리에 모였다. 왼쪽부터 딸 지지, 앤, 루스와 아내 루스 그레이엄, 빌리 그레이엄, 아들 프랭클린, 네드. 빌리그레이엄복음전도협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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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생활에 관한 질문을 받을 때마다 나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아내 루스는 제가 아는 그 누구보다 말씀대로 산 사람입니다. 제 영성과 사역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고 빌리 그레이엄 목사)

그레이엄 목사는 아내 루스 그레이엄(2007년 별세)을 평생의 동반자이자 사역 파트너로 대했다. 복음전파뿐 아니라 자녀양육에도 뜻을 함께한 부부는 2남3녀에게 신앙을 전수하기 위해 힘썼다. 빌리그레이엄복음전도협회(BGEA)와 기독교 구호단체 ‘사마리아인의 지갑’ 대표인 장남 프랭클린은 부모에 대해 “어릴 때부터 성경을 암송케 했으며 평생 자녀의 삶과 신앙을 위해 기도했던 분들”이라고 회고했다.

그레이엄 여사는 중국 의료선교사였던 부모의 영향으로 1920년 중국에서 태어났다. 13세 때 평양의 기숙학교에 진학한 그는 3년간 북한에서 학창시절을 보냈다. 이러한 경험은 그레이엄 여사가 티베트 선교사로 진로를 결정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

그랬던 그가 37년 미국 일리노이주 휘튼대학에 진학해 그레이엄 목사를 만나면서 진로를 바꾼다. ‘설교자’란 별명을 가진 그레이엄 목사의 전도 열정에 반한 것. 그는 대학 졸업 직후인 43년 결혼해 다섯 명의 자녀를 뒀다.

그레이엄 목사는 아내를 ‘가장 신뢰할 만한 조언자’ ‘가장 친한 친구’로 불렀다. 그는 “아내의 격려와 지원이 없었다면 내 평생의 업적은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아내와 자녀에게 애정을 보였던 그레이엄 목사였지만 185개국을 누비며 복음을 전한 그가 가족과 보낸 시간은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그는 집회로 집을 비울 때마다 숙소에 가족사진을 놓고 틈틈이 가족을 위해 편지를 썼다. 동시에 유혹에 흔들리지 않도록 마음을 다잡았다. 쾌활한 성품의 그레이엄 여사는 남편의 계속된 부재에도 매일 아침저녁으로 가정예배를 드리고 성경 암송을 지도하며 자녀를 살뜰히 돌봤다.

치유사역단체 대표인 딸 루스는 “아버지는 먼 곳에서 우리 남매를 양육했다”며 “아버지는 우리를 사랑했지만 함께해 주진 못했다. 그는 항상 많은 책임감을 느꼈다”고 회고했다. 평소 가족과 거의 시간을 보내지 못한 데 대해 안타까워했던 그레이엄 목사는 목회자가 된 손자 윌에게 “가족을 떠나 멀리 가지 말라”고 조언하기도 했다.

그레이엄 목사는 은퇴 후 아들 프랭클린에게 BGEA 운영을 맡기고 복음전파 및 구호사역을 함께했다. 현재 목회자인 프랭클린은 20대 초반까지 방황하던 자신을 붙잡은 건 ‘부모의 전폭적 지지와 기도’라 말한다.

그는 지난 21일(현지시간) 미국 유력 일간지 ‘USA투데이’에 보낸 기고문에서 “아버지는 ‘우리 부부는 네가 무엇을 하든 자랑스럽게 여기고 사랑하겠지만 삶에서 그리스도를 받아들일지 여부는 반드시 선택하라’고 조언했고 결국 회심했다”고 말했다. 이후 프랭클린은 20년간 미국 안팎에서 아버지의 사역을 도왔다.

그레이엄 목사는 현장 집회뿐만 아니라 책으로도 복음을 전했다. 대표적 저서로는 ‘내 소망은 구원입니다’ ‘인생’ ‘새로운 도전’ ‘빌리 그레이엄의 소망’ ‘천사, 하나님의 비밀 특사’ ‘예수의 십자가를 기억하라’ ‘기꺼이 거듭나는 삶’ 등 30여권이 있다. 프랭클린은 “60여년간 많은 책이 나왔지만 아버지의 메시지는 47년 미국 미시간주 첫 집회 설교 이후로 변한 게 없다”며 “그분은 예수의 구속과 사랑에 관한 복음을 일관되게 전해왔다. 아버지가 살아있다면 지금도 똑같은 말씀을 하실 것”이라고 밝혔다.

양민경 구자창 기자 grie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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