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한장희] 펌프질 없는 마중물 소용없다 기사의 사진
지하수를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메마른 펌프 안에 먼저 물 한 바가지를 부어야 한다. 이를 마중물이라고 한다. 문재인정부는 지난해 공공부문 일자리 창출 등을 위해 11조원 넘는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했다. 민간부문 일자리 증가로 이어질 마중물이란 기대도 수차례 밝혔다. 공공무분 일자리가 늘어 소득이 증가하고, 내수가 살아나면 기업도 고용을 늘릴 것이라는 논리다. 그런데 마중물을 부어도 물은 쏟아지지 않고 있다. 추경이 집행된 3분기와 4분기에 조짐이 있을 법도 한데 정부가 받아든 고용 성적표는 낙제점이다. 지난해 말 청년 실업률은 2000년 이후 최고치인 9.9%까지 치솟았다.

물이 솟구치지 않은 것은 펌프질 없이 마중물만을 부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펌프질, 즉 민간기업이 일자리를 늘릴 유인책이 없었다는 것이다. 기업은 실적이 조금 좋아졌다고 바로 고용을 늘리지 않는다. 한번 뽑으면 해고가 쉽지 않은 국내 노동시장의 특성도 기업이 채용에 보수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 중 하나다. 물론 업황이 확실히 좋아진다고 판단되거나, 신규 사업에 진출할 때는 기업도 과감히 신규 채용을 확대한다. 따라서 민간 일자리 창출을 유도하려면 정부는 기업이 투자를 하거나 새로운 비즈니스를 할 수 있게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 기업들의 핵심 요구는 규제완화다. 명시적으로 법에서 허용되는 행위만을 할 수 있는 ‘포지티브 규제’가 아닌 법률로 금지한 것을 제외하고 어떤 일도 마음대로 할 수 있게 하는 ‘네거티브 규제’로의 시스템 전환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정부도 이런 요구를 잘 알고 있다. 혁신성장 정책의 일환으로 ‘신산업 분야 네거티브 규제 가이드라인’을 발표하고 규제혁파에 나서겠다고 강조한 것도 기업들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기업들은 믿지 않는 눈치다. 규제개혁은 역대 정부에서 끊임없이 추진돼 왔지만 지금까지 별로 개선된 게 없기 때문이다. 공무원들이 인허가권이라는 ‘밥그릇’을 쉽게 포기하겠냐는 불신도 여전하다.

정부는 곧 청년일자리 대책을 발표한다. 재정과 조세·금융·규제 등 정책수단을 총동원하겠다고 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청년일자리 관련 특단의 대책을 강하게 주문한 데 따른 조치다. 문제는 핵심 대책으로 일자리 추경이 다시 검토되고 있다는 점이다. 김동연 경제부총리가 최근 잇따라 추경 가능성을 언급하자 일각에선 문재인정부 2차 일자리 추경 편성을 기정사실화하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20조원 정도 세수가 더 걷힐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정부는 추경을 편성해도 나랏빚이 느는 것은 아니라는 논리를 들고 나올 게 뻔하다. 하지만 지난해 추경 11조원, 올해 본예산 19조원을 쏟아부은 마당에 요행히 잘 걷힌 세금을 또 투입해 공무원을 늘리겠다고 한다면 반발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긴급상황에만 허용한다는 법 취지가 무색할 만큼 연례행사가 돼 ‘습관화된 추경은 적폐’라는 비판도 다시 불거질 수 있다.

지난 10년간 21차례나 청년일자리 대책이 발표됐다. 이는 암울한 청년고용 상황이 어제오늘 일이 아닌 구조화된 문제라는 점을 보여준다. 추경이라는 단기 긴급 처방으로 구조적인 문제에서 비롯된 일자리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쉽지 않다. 잘 낫지 않는 고질병이라면 다시 정밀 진단하고 맞춤형 처방을 강구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추경 타령에 앞서 지난해 추경이 제대로 집행됐는지, 민간 일자리의 마중물 역할을 했는지 그 효과부터 점검하는 게 우선인 이유다.

문재인정부는 일자리 창출을 최우선 국정과제로 내세웠다. 따라서 경제지표가 좋아져도 일자리, 특히 청년일자리 사정이 좋아지지 않는다면 성공했다는 평가를 듣기 어렵다. 그렇다고 급한 마음에 쉽게 쓸 수 있는 방법만 동원한다면 상황은 더 심각해질 수 있다. 특단의 대책에 규제와 조세 정책도 포함한다니 일단 정부의 대책을 두고 볼 일이다.

한장희 경제부장 jhha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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