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였던 어머니, 제겐 너무 귀한 어머니”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길원옥 권사 아들 황선희 목사

“위안부였던 어머니, 제겐 너무 귀한 어머니” 기사의 사진
황선희 목사가 지난달 28일 인천 연수구 생수감리교회에서 어머니이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길원옥 할머니와 함께 찍은 사진을 들고 유년시절을 회고하고 있다. 인천=강민석 선임기자
“어머니와 단둘이 살던 어린 시절에 종종 묻곤 했어요. ‘엄마 가족은 어디 있느냐’고요. 그땐 별말씀 없었는데 나중에야 이유를 알았죠. 종군 위안부로 중국에서 고초를 겪다 돌아온 뒤 가족과 연이 끊어졌다는 걸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길원옥(91) 할머니의 아들 황선희(59) 생수감리교회 목사가 어릴 적 기억을 더듬으며 이렇게 말했다. 평양에서 자란 길 할머니는 해방 후 고국에 돌아왔으나 이내 6·25전쟁이 터지면서 다시 가족 곁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일제 강점기, 6·25전쟁 등 한국 현대사의 모진 굴곡을 온몸으로 겪은 길 할머니의 신산한 삶을 아들 황 목사에게 들었다. 인터뷰는 지난달 28일 황 목사가 목회하는 인천 연수구의 교회에서 이뤄졌다.

고령에도 불구하고 일본군 위안부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 14년간 국내외에서 활동해 온 길 할머니는 현재 노환으로 서울 강북삼성병원에 입원한 상태다. 일주일에 한 차례 병실을 찾는다는 황 목사는 매일 오전 9시 전화로 어머니의 안부를 묻는다. 황 목사가 말하면 길 할머니가 짤막하게 답하는 식으로 주로 통화가 이뤄진다.

그는 “2년여 전부터 치매 증세로 말을 잘 못하신다”며 “아기처럼 ‘응’ 하고 답하는 어머니가 제겐 참 사랑스럽다. 귀한 어머니를 만나게 해 준 하나님께 감사하다”며 울먹였다.

황 목사는 길 할머니가 가슴으로 낳은 아들이다. 경기도 부천에서 술집을 운영하던 길 할머니는 31세 때 갓난아이였던 황 목사를 품었다. 산부인과 원장이 평소 소외 이웃을 돕던 길 할머니에게 도움을 요청해서다. 10대 미혼모에게 태어난 아기는 부양할 손길이 없었다. 그 길로 아기를 데려온 길 할머니는 젖동냥을 하고 한약을 먹이며 지극정성으로 키웠다. 아이에게 성(姓)을 주기 위해 일부러 첩 생활을 해 호적을 만들어줬을 정도다.

노점에서 나물, 생선, 번데기 등을 팔며 홀로 아들을 목회자로 키워내고 신앙생활도 열심인 어머니가 양부모란 사실을 안 건 황 목사가 40대 때다. 위안부 경험이 있다는 것도 그즈음 알았다.

그는 “본인이 위안부였고 양부모란 사실을 ‘아들의 장래를 위해 밝히지 못했다’며 우시더라”며 “어머니께 ‘부끄러운 일이 아니니 감추지 말라’고 말씀드리며 아내와 위로했다”고 말했다.

그날 이후 황 목사 부부는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에 연락해 길 할머니의 치유 회복과 위안부 문제 공론화를 위해 힘썼다. 손녀인 황 목사의 딸은 2년 전 캐나다에서 열린 위안부 다큐멘터리 ‘어폴로지’ 개봉 시사회에 참석하기도 했다. 캐나다에 거주하는 딸은 오는 4월 수요집회에도 참석할 예정이다.

조속한 시일 내 위안부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황 목사의 가장 큰 바람이다. 그는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가운데 생존자가 몇 분 안 남았다”며 “어르신들이 돌아가시기 전에 일본 정부의 사과를 받을 수 있는 날이 오길 기도한다”고 말했다.

인천=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

사진=강민석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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