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우성규] 당나귀 대출 기사의 사진
우리나라 1호 은행은 1897년 설립된 한성은행이다. 민족계 자본이 뭉쳐 상인들에게 돈을 빌려주려는 의도로 영업을 시작했지만, 돈 빌리는 대신 담보 맡기고 이자 꼬박꼬박 내는 대출 제도가 아무래도 낯설기 마련이었다. 나중에 대한제국 황실 및 정부 재산 관리를 맡기 전까지 한성은행은 고전을 면치 못했다. 이 은행은 해방 직전 조흥은행으로 통합됐고 2006년엔 신한은행에 합병됐다.

초창기 개점휴업 중이던 한성은행에서 처음으로 대출 받은 상인은 대구 출신이었다. 서울서 물건을 떼다 대구에 가져가 되파는 사람이었는데, 물건 살 돈이 부족하자 은행을 찾아왔다. 은행에선 이 상인의 신용도를 가늠할 길이 없었고 집문서 땅문서도 대구에 있어 가져오기 힘들었다. 그렇다고 마수걸이 손님을 내치기도 어려웠다. 난감하던 찰나 은행원의 시선이 상인 뒤편 당나귀로 향했다. 결국 상인이 타고 온 당나귀를 담보로 은행은 대출을 해줬다. 살아있는 동물을 담보로 잡은 탓에 전 행원이 달려들어 아침저녁으로 당나귀 먹이를 챙겼다. 갓 쓰고 도포 입은 은행 임원들은 이 당나귀를 타고 출장을 다니기도 했다. 신한은행이 운영하는 한국금융사박물관에서 근대식 담보대출 1호로 소개된 당나귀 대출 이야기다.

2011년 부실대출로 뱅크런을 일으킨 저축은행 파동 당시엔 페라리 람보르기니 부가티 대출이 눈길을 끌었다. 600억원대 부실대출 혐의로 대법원 확정 판결을 받은 저축은행 대표의 지하 창고에서 억대 슈퍼카 19대가 주차된 채 예금보험공사 추심팀에 발견됐다. 저축은행 대표는 죄를 경감받기 위해 대출의 담보라고 주장했지만, 개인 컬렉션으로 보인다는 현장팀 보고가 있었다. 대부분 경매에 넘겨져 예금보험 비용으로 환수됐는데, 그중 1대는 한 공무원이 성능을 시험해 봐야 한다며 끌고 나갔다가 박살을 내 결국 자동차보험으로 해결했다. 당나귀도 아닐 진데 담보물은 함부로 끌고 나가선 안 된다.

신용회복위원회와 한국자산관리공사가 지난달 말부터 주택담보대출 연체자에게 1년간 경매 처분을 유예해 주는 조처를 시작했다. 대상자가 은행권에서만 8만7000명 정도다. 주택담보대출은 한 달만 연체해도 금융기관이 곧바로 대출 약정서상의 계약 위반인 점을 들어 담보인 집을 처분할 수 있다. 지난해 말 가계의 주택담보대출 잔액은 720조원으로 가계부채 1451조원의 절반 비중이다. 금리 인상기 담보대출 무서운 줄 알아야 한다.

우성규 차장

삽화=이은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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