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김찬희] 그는 어디로 갔을까 기사의 사진
4년쯤 됐을까 했더니 올해로 7년째라고 했다. 일본에서 바리스타 공부를 했다는 그가 터를 잡은 곳은 본래 간판 가게가 있던 자리다. 세로 길이가 좁은 길쭉한 직사각형 부지라서 딱히 뭘 할 수 있을까 했었다. 불과 얼마 전까지 즐비하던 논으로 이어지는 좁은 길이라 더 그랬었다.

그 자리에 꽤 괜찮은 카페가 들어섰다. 커피 맛이 훌륭한데다 지하에서 인근 주민을 대상으로 제빵수업도 하고, 2층을 분위기 좋은 공간으로 꾸몄다. 늦게 출근하는 날이면 집에서 가까운 지하철역 두 곳 중에 그 가게 앞을 지나는 동선을 선택했다. 커피를 내리는 잠깐 동안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기도 했다.

그 가게가 얼마 전 문을 닫았다. 지하철 막차를 타고 퇴근하던 길에 보니 굳게 잠긴 유리문 앞에 ‘임대/매매 000-0000-0000’라고 적힌 종이쪽지가 붙어 있었다. 그러고 보니, 마곡지구 개발로 주변에 아파트 단지며 대기업 연구개발센터가 들어섰지만 그 가게는 되레 손님이 줄기만 했다. 인근에 주차장까지 갖춘 프랜차이즈 카페가 생기는 마당에 좁은 골목 끄트머리에 서 있는 카페를 누가 찾을까 싶다는 그의 푸념도 생각이 났다.

그 가게뿐만 아니다. 근처에 있던 가게들도 하나둘 모습을 감추거나 바뀌었다. 자영업, 특히 치킨가게나 카페의 치열한 경쟁을 생각하면 창업과 폐업은 흔한 일일지 모른다. 다만 300m가량 되는 길을 걸으며 느끼던 포근함은 사라졌다.

골목은 도시에 사는 이들에게 지문(指紋) 같다. 기억, 향수, 그리움이 남긴 옅은 흔적이다. 어릴 때 살던 동네는 어른 두 사람이 동시에 지나가기 힘든 골목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구불구불 걷다보면 우물이 있고 미용실, 철물점, 떡집, 책방도 있었다. 막다른 길 같지만 막상 끝에서 다른 길로 연결되고, 그 모퉁이에 구멍가게가 있었다. 몇 해 전에 그 동네를 들렀다. 재개발은 많던 골목을 몽땅 지워버렸다.

골목은 어쩌면 도시의 허파인지도 모르겠다. 곧게 뻗은 도로, 넓은 인도, 멋진 고층빌딩에 숨이 막힌 사람들은 좁디좁은 길로 스며든다. 서울 상수동, 연남동, 망원동 등 ‘핫 플레이스’라고 불리는 곳은 골목을 품고 있다. 여행객들은 유명 관광지나 명소에서 얻은 허전함을 도시의 ‘숨은 그림’으로 채운다. 독일 프랑크푸르트나 벨기에 브뤼셀에서 여유와 기쁨을 준 장소는 대성당과 괴테하우스, 오줌싸개 동상이 아니라 골목이었다.

골목은 문화를 만들고 창업으로 이어지는 ‘성장의 공간’이 될 수 있다. 서울 이태원에는 ‘장진우 거리’라고 불리는 작은 뒷골목이 있다. 사진작가 장진우가 지인들을 대접하던 작업실이 간판 없는 식당으로 입소문이 났고 레스토랑, 술집, 빵집, 갤러리 등이 잇따라 둥지를 틀었다. 그는 공존과 조화를 꿈꾸는 듯하다. 장애인들이 빵을 만드는 빵 공장을 세우고, 이 빵을 팔기 위해 카페를 열었다. 이주여성을 고용하는 식당을 세우고, 지역균형발전에도 관심을 기울인다고 한다.

골목은 훌륭한 관광 상품이기도 하다. 통인시장과 연결되는 서울 서촌, 전주 한옥마을과 남부시장 청년몰은 이미 많은 국내외 관광객을 불러 모으고 있다. 우리나라 관광산업 규모가 국내총생산(GDP) 대비 2.5%에 불과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골목을 키우고 가꾸는 게 유명 관광지를 개발하는 것보다 훨씬 더 효과적일 수 있다.

골목은 ‘일자리 용광로’로서의 잠재력도 지니고 있다. 이미 한계를 노출하고 있는 제조업의 일자리 창출 능력을 보완하거나 대체할 수 있다. 그 곳만의 이야기를 입히고, 공동체 문화의 씨를 뿌리고, 창업을 북돋아준다면 마냥 불편한 공간이 아니라 지역경제를 책임지는 든든한 실핏줄이 될 수 있다. 벤처 캐피털과 결합한 사회적 기업을 통해 단단한 소상공인 그물을 엮고, 관광 인프라를 구축하면 일자리의 요람으로 재탄생할 수도 있다. 한국만의 독특한 ‘골목 경제’를 만날 수는 없을까.

김찬희 경제부 차장 chkim@kmib.co.kr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